2017년 1월 5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6-49)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모세 율법에 기록되었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이, 즉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나다나엘에게 전합니다.
기쁘고 들뜬 마음 가득 안고 소식을 전한 빌립의 말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구약의 미가서(5:2)에 의하면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날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몰랐을 것입니다. 혹은 변두리 마을 갈릴리 나사렛을 무시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나다나엘은 냉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 반문에 빌립은 나다나엘과 논쟁하거나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보라!”(1:46)고 말합니다. 예수님 그분께 초청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논리적인 설명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넘어선 것입니다. 예수님 그 분을 믿는 것은 성령님께서 열어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을 전하고 초청하며 그 결과는 성령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언변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 후는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 중에는 누군가 건네 준 성경을 읽다가, 회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선교지에서는 예수 영화를 보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많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 그분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주변이나 조건의 변화가 참된 믿음을 갖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와서 본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을 때, “와서 보라!”(1:3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룻밤을 지낸 그들은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고 외칩니다(4:29.) 그리고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온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함께 유하고서 더 많은 사람들이 친히 예수님을 만나고 들음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4:42). 예수님을 본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1:49)
그리고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을 본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아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칭찬하시며 무화과 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던 그를 알고 계셨으며 더 나아가 장차 더 큰 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이 연결됨을 보았던 야곱처럼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중보자가 되시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을 볼 것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와서 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금도 초청하십니다.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을 사모하도록 부르십니다. 상황과 환경이 주는 복을 넘어선, 복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더 깊이 경험하라고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 받은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께 “와서 보라!” 고 권면해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성령님께 맡기고 예수님 자신에게 오도록 초청하는 것이지요. 복음의 진리인 말씀으로, 예배로,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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