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모름에서 앎으로(요1:29-42). 2017.1.4

20170104

2017년 1월 4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1:29-34)

오늘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 가득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는 세례요한과 두 제자가 예수님을 점점 더 알아가는 과정이 나와 있습니다. 두 제자는 처음에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한 명은 안드레이고 다른 한 명은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사도요한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오늘 이들처럼 예수님을 점점 더 잘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1. 세례요한의 앎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친척이었지만 예수님의 실체를 몰랐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요1:31.33)’ 요한은 예수님과 서로 잘 알았으나 예수님의 영적인 실체와 본질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을 들어서 알지만, 예수님의 실체를 잘 모르기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실체를, 은혜와 성령의 도움으로 깊이 깨닫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열심히 해 주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실체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요1:34)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유대인들은 양을 가져올 때 헷갈리지 않으려고 소유주의 이름을 붙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안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알아가는 것은 성숙이고 발전입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32절에 나옵니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한은 예수님 세례 시에 이 신비하고, 거룩한 광경을 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이 이 신비한 성령의 사건을 눈으로 봤는지, 영적인 감동으로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세상 사람들의 죄를 처리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체험을 통한 예수님에 대한 앎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가까워져 성령에 충만해 감으로 점점 더 예수님과 깊이 알아가며 큰 은혜와 감동 속에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과 멀어지면 현실주의자가 되어 사소한 것에 집착하며 본질과 멀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올 한해 성령 충만 하셔서 예수님을 더욱더 알아가시는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두 제자의 앎
35절부터 보면 예수님을 만나고 알아가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안드레와 시몬인데 두 사람은 원래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는데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돼버립니다.

이 부분에서 참 할 말이 많지만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제자를 예수님께 보낸 요한의 큰 모습, 인색하지 않은 모습만은 배우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자신에게 등 돌리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요한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자신이 말한 대로 합니다. 요한이 뭐라 말했습니까? ‘자신은 쇠하고,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 그러니 흥할 예수님께 자신의 유능한 제자를 깔끔하게 보낸 겁니다. 자신이 믿는바 대로 산 겁니다.

이런 모습 보면 참 부럽습니다. 교회 현장에서 보면 좁아터진 마음을 많이 보는데 요한은 섭섭은 했겠지만, 기꺼이 떠나는 제자들을 보내줬고, 잡지도 않았습니다. 제자의 장래를 위해 더 좋은 스승에게 넉넉하게 보내주는 모습을 보면 참 감동적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사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고 따라간 겁니다. 그래서 38절에서 예수님이 물으신 겁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내가 누구라고 따라오고, 나를 따라와서 구하는 게 뭐냐? 묻고 있는 겁니다. 스승 요한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아직도 알아야 할 게 많고, 배워야 할 게 많았던 겁니다.

그래서 ‘무엇 구하느냐?’ 물을 때 주님께 부탁합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 무슨 얘기입니까?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고, 제자 삼아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시면서 더 알아갈 기회를 주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행착오도 필요하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비로소 주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거북이의 걸음이라도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선명하게 주님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좌정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41절에 보면 안드레가 시몬을 찾아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개하는 데, 우리도 어느 순간 자신이 알게 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올 한해도 우리 주님 더 깊게 알아가는 날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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