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기적보다 기도(합3:1-19). 2016.11.30

20161130

2016년 11월 30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1-2)

하박국서는 3장의 짧은 말씀이지만 우리 신앙생활에 주는 도전과 과제가 만만치 않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기적’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고난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이 모든 상황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드립니다. 그것이 건강문제든 자녀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모든 우리의 문제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바꿔 놓으시는 기적을 바라고 기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적을 부인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을 믿으며 소망합니다. 그 바라고 간구하는 기도로 응답받는 기적이 설사 자연법칙을 어긋나더라도 우리는 이 기적을 하나님의 통치 하심과 섭리의 목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서라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기적을 때론 소망해야 하고,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늘 기적만 바란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일 겁니다. 기적은 가능하고, 우리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기적이기에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만약 기적이 자주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 큰 혼란과 문제를 일으킬 것 입니다. 예를 들어 모두 1등만을 소망하며 기도할 때, 또 주식 대박을 기대하며 기적을 기도할 때, 늙어도 병들지 않게 바라고 기도할 때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화 브루스 올 마이티(Bruce Almighty)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적으로 인해 세상이 마비됩니다.

톨스토이도 모두 기적을 바라고 기적이 일어날 바에는 차라리 응답하지 않는 기도가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응답하지 않은 기도도 축복일 수 있습니다. 응답받지 못한 당시에는 아쉽고 섭섭하겠지만, 그 안에 깊은 하나님의 경륜과 인도하심이 있다면(이끄심) 그것은 축복입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인정해야 합니다. 나치 치하에서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히틀러가 전쟁에 승리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한다면 더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과 고통으로 죽어갔을 것입니다. 또 독일의 한편에서는 본회퍼를 중심으로 한 기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독일의 패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적이 하나님의 일하심이지만 기적이 만사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즉 하나님은 기적을 행사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늘 행하지 않으심을 우리는 왜? 라는 질문으로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간섭하시고 이래라저래라 하시지 않습니다. 또 자연에는 스스로 질서를 찾을 수 있도록 자연법칙을 주셨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사건건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휘젓고 다니신다면 자유의지나 자연법칙은 무용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도 인간의 죄성은 기적을 볼 당시만 잠깐 깨달을 뿐입니다. 주님이 많은 무리에게 기적을 행하셨으나 깨닫고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된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아플 때 필요할 때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리지만 얻고 나면 하나님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꽤 많음을 봅니다. 우리는 아쉬울 때는 하나님의 작은 만져주심도 간절히 사모하지만,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기적은 잠깐의 기적 사건으로 빛을 잃고 끝나게 됩니다. 즉 기적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기적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신앙을 쫓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의 신앙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맡겨 드리는 삶입니다. 이것은 겸손한 신앙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인도하심대로 순종하며 따르는 삶입니다. 그리고 혹시 신앙의 여정 중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면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1장에서 기도의 응답이 없어서 답답해했습니다. 또 응답을 받았으나 마음에 안 들어 답답해 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2장부터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묵시를 받고 서서히 변해갑니다. 그리고 오늘 3장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계획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자기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된 것 입니다. 우리는 어제 새벽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하필 내 아들입니까?’ 부르짖던 그가 ‘왜 내 아들은 안됩니까?’로 변하는 것을 봤습니다.

본문 2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합니다. 이 소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 즉 악(폭력사회)을 허락하신 것과, 악인(바벨론 세력)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깊은 기도 중에 이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에 가슴에 불이 붙어 기도의 자리에 나갈 수 있었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반응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고 커져서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의 중심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드립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응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부흥과 긍휼을 간구합니다. 여기서 주의 일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닌 멸망.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기에 수용합니다. 그래서 멸망인데도 하시라고 기도합니다. 따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회복을 빨리 시켜달라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으로 지금 일어날 상황을 뒤집어엎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하는 순종의 고백 기도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참되고 진정한 기적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기적만으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 중심의 순종하는 기도생활을 하게 될 때 나의 하루하루는 모두 하나님의 기적이 됩니다. 기적을 베풀어 주셔도 내가 기적인 줄 모르면, 그 기적은 나를 망치는 사탄의 사탕발림이 됩니다.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주셔서 내가 변화될 때 나의 모든 순간은 기적임을 내가 감사로 고백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런 감사로 나온 노래(17절)는 두고 두고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가 됩니다.’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기도의 응답은 참되고 겸손한 기도로 시작됩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삶 되시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립니다. (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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