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0. 주일설교: 만족과 감사의 비결(빌4:10-13). 추수감사절.

20161120

말씀: 만족과 감사의 비결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0-13, 개역한글)

추수감사절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영광이 크게 다가오시는 감사한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 주일 감사를 말씀드리는 것이 사실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삶의 상황과 현실이 각박하고 어려워, 신음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몇몇만 감사하면 감사 주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 중에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셔서, 우리 심령에 감사함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는 감정에 따르게 되면 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내 마음의 결단과 마음의 태도로 가능하게 됩니다. 환경과 상황과 조건이 되면 감사하리라고 하게 되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생기는 상황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살리라고 마음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한가지 기쁨으로 열 가지 고통을 덮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가지 고통으로 열 가지 기쁨을 덮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후자에 속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후자에 속하게 되면 감사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한가지 기쁨으로 열 가지 고통을 덮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장기는 ‘감사’입니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끝까지 감사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나는 감사하겠다’는 마음의 결단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 마음과 결단이 어떤 상황이 닥치든 내 삶을 지탱케합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 안에 만족이라는 정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지’하는 마음의 정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있으려면 만족이라는 성향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감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서신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하는 후렴구 같은 권면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바울은 사도직을 맡고 난 후 한 번도 상황이 좋았던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철저히 자신 안에 ‘만족’이라는 정서가 있었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가식이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을 살펴봐도 바울이 마지못해 감사한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바울은 진짜로 만족했고, 진실한 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삶의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 안에 만족이라는 정서가 있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또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만족은 하나의 짝입니다. 반대편에는 불평과 불만족이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족은 내 마음속에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 안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냥 감사하면 위선입니다. 내 안을 살피고 만족할 수 있는 내 내면의 모습이 살아나야 진정한 감사의 삶을 살수 있게 됩니다.

만족은 굉장히 주관적인 감정이며 성향입니다. 예를 들어 백만 원이 있을 때 너무 감사하고 감격해 하는 사람이 있지만, 너무 부족해서 만족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가 10등 안에 들면 좋아서 신나는 부모도 있고, 1등 못해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같은 것을 놓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욕구로 대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태도와 성향이 생깁니다. 그래서 만족의 문제는 쉽게 취급하면 안 됩니다. 너무나도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바울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만족하는 비결을 바울은 배운 것입니다. 만족을 못 하면 감사는 없습니다. 감사는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족을 다스리는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비결을 못 배우면 우리는 언제나 모자라고 언제나 충분치 못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우리의 지금 상황은 점점 더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갑니다. 절대적 만족은 없습니다. 전부 비교하게 됩니다. 지금은 만족 못 하는 사회구조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감사의 시대가 아닙니다. 불평과 불만의 시대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를 사회는 약자로 우습게 봅니다. 그래서 모두들 목소리를 크게 내며 아우성을 칩니다. 그렇게 해야 강자인 양 느껴집니다. 본인은 속으로 ‘이 정도면 되지’하며 만족하면서도 겉으로는 전략적으로 불평을 터뜨리는 시대입니다. 불행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결(감사함으로 주시는 능력과 은혜의 삶)을 놓치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 앞에 놓인 난제들을 극복하고 전진하게 되는 비결은 감사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지금 상황을 마지 못해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맘에도 없는 감사를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무책임한 것입니다. 불의함을 보면서도 감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자녀가 방구석에서 인터넷 게임만 하면서 ‘나는 만족해’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만족과 감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예는 책임을 미루는 것이며 게으른 만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족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보여주는 만족입니다. 바울은 쉼 없이 사도 직무를 감당하면서( 본인의 책임을 다하며 게으름 없이) 잠자리가 험하든, 먹을 것이 없든, 죽을 정도로 맞던, 감옥에 갇히던,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불만족한 상황들이 먹는 문제, 자는 문제, 인정받는 문제,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자 하여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많이 배워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상황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입니다. 빌립보교회 교우들이 십시일반으로 헌금을 모아서 바울에게 보내옵니다. 바울은 굉장히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 기쁨이 돈 자체 때문이 아님을 바울은 얘기합니다. 11절 이하 말씀입니다. 내가 궁핍하기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잊지
않고 하나님 일에 헌금을 보낸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비천에 처해도, 배고파도, 궁핍해도 다 자족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나는 불평하거나 타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바울은 풍부했던 적이 없습니다. 늘 천막치고 전도하며 어려움에 부닥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고생 안 해도 될 엘리트신분의 바울이었습니다. 우리도 환경의 지배 속에 살아갑니다. 환경을 극복하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환경이 나빠지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우리는 극도로 예민해지고,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이 얼마나 평안을 주는 사도의 말씀입니까? 그 힘든 상황 가운데 처하면서도 이런 말씀을 전하시는 사도가 우리의 사도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천성이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혈질이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 박해의 선봉에 섰던 사람입니다. 바리새파 중 살기등등한 극단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그리스도의 섬광으로 옛 자아의 상징인 눈이 멀게 됩니다. 이 회심사건으로 바울은 자신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모든 삶에 개입하시고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회심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삶은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삶입니다. 13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만족의 근거와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바울의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던 것 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삶의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비결도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늘 만족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늘 만족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족은 내 실력, 내 능력에서 나올 수 없음을 봤습니다. 우리는 만족함의 유일한 답, 유일한 factor가 하나님임을 봤습니다. God-factor가 중요합니다! 기쁨과 감사의 힘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만족이 없기에 일이 잘 안 풀리면 끊임없이 좌절하고 불평하며 물결이 요동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삶에 ‘영광의 하나님’이 깊이 들어 오시고, 개입하시고, 우리가 확신 속에 있게 되면 우리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게 됩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내 안에 희미하게 되면, 감사도 또한 희미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면서 뛰어넘으라고 하십니다. 끊임없이 요청하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의 눈을 활짝 떠서 하나님을 보시는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 흠뻑 취해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십시오. 상당히 넉넉해 질 수 있습니다.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울고 웃지 않고, 상황에 의연히 대처하며 마음의 자유로움을 가진 넉넉한 사람으로 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삶에 매어 살게 되면 감사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삶의 환경이 극도로 힘든데 교회에서 목사가 감사하라는 설교를 하면 오히려 반감만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자유로움에서 구속하여 옭아매는 매임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시간/편리/타인입니다.

1. 마음
하나님을 떠난 마음은 믿을 수 없고, 어둡습니다. 마음이란 우리 삶의 모든 사건이 축적되어 쌓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밝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60~70대 중장년층 세대는 대부분 우울하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삶의 상황과 조건이 그러합니다. 아이들 세대도 우울합니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힘들어하고 우울해 합니다. 이런 마음의 어두움은 주위에 전파되고 전염됩니다. 우리는 늘 주변이 어두움으로 둘러 쌓여있습니다. 폭력과 살인과 좌절과 시기심이 넘쳐납니다. 이것은 이 사회에 감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한(하나님이 삶 속에 없는 한) 감사는 없습니다.

2. 시간
시간도 우리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과거라는 시간은 내게 상처라는 모습으로 우리를 얽매고 있고, 우리는 과거의 상처에 매여 끙끙 앓으며 현재의 기쁨과 감사함을 잊고 삽니다. 미래는 우리를 염려라는 마음으로 매고 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우리는 시간의 매임에서 놓여야 현재 시간의 의미와 감사함을 충만히 누릴 수 있습니다.

3. 편리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굉장한 문명을 이루어 냈습니다. 세탁기, 냉장고, 인터넷, 자가용 등 문명은 편리함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우리에게 놀랍게도 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편안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것 입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짜증 내고 싫어하고 안 하려 합니다. 섬김에는 몸으로만 해야 하는 섬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하고 힘들기에 다 거부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기도 중에 ‘아프리카로 가서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집사님은 거절합니다. ‘거기 가면 수세식 화장실이 없잖아요. 가기 싫습니다’라고 말이지요.

4. 타인
나 아닌 너는 내 삶을 많은 것에서 묶습니다. 이렇게 매는 상대방으로 인해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억누르거나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하려면 확고한 ‘나’가 있어야 합니다. 이 확고한 나는 물론 하나님께 내 자아를 내어드린 확고한’ 나’입니다. 내가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나를 잃어버리고 살 때,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와 잣대에 따라 내 삶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중심에 나가 없을 때 우리는 타인에 묶인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전전긍긍합니다. 그 평가에 목숨 거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비교하는 삶을 삽니다. 남보다 좀 더 나은 삶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나뿐 아니라 내 자녀, 내 가족 모두 그 비교와 평가에 희생되어야 하는 아픈 삶입니다. 그것은 만족 할 수 없는 삶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만족의 근원 Factor는 유일한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보신 것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이유가 다 있는 겁니다. 이런 데서 풀려나야 비로소 감사라는 소중한 단어가 서서히 내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 주일 아침인데, 이와 같은 매임에서 벗어나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고 하는 놀랍고 담대한 선언이 저와 여러분들 입에서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을 끝까지 이끄시고, 영광의 문으로 인도하시는 나를 구원하신 영광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노래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면서 약해지지 마십시다. 비천에 처하고, 궁핍에 처할 때 더 감사하는 엄청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만족과 감사가 사라진 이 불평과 불만의 세상에 ‘감사하는 자’로 우뚝 서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하고, 축원 드리겠습니다. (정리: 김화영)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