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6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정의로 판단하리니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셀라) 4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찌어다 (시75:1-5, 개역한글)
오늘부터 다시 시편 말씀 입니다. 아삽의 시입니다. 특별히 오늘 볼 본문 말씀은 교만의 문제를 다룹니다. 교만한 자를 심판하신다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교만의 의미는 ‘주제넘음’입니다. 사람의 교만과 주제넘음으로 한번쯤은 다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오늘 말씀은 충분히 공감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주제넘음은 누구나 조심해야 합니다. 피조물로써의 나의 본분과 형편을 넘어서는 과한 욕심은 이 죄악을 불러옵니다. 교만의 모습은 병든 모습입니다. 내 주변에 아픔과 상처를 줍니다. 속담에 ‘개도 텃세한다’ 했습니다. 요즘 애완견들 보면 낯선 사람 보면 으르렁거리며 텃세를 부림을 봅니다. 선조들은 이 속담으로 사람의 텃세부림을 빗대어 얘기한 것 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가진것 같은 ‘스스로 힘이 있다’는 자각이 생길때, 타인에게 텃세를 부립니다. 동물적 속성입니다. 텃세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아를 발견할 때 까지는 내 자신의 주인이 나라고 여기기에 누구나 주제넘을 수 있고, 텃세를 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아는 자신의 힘을 자각할 때 끊임없는 교만으로 텃세를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타인을 억누르고 억압했습니다. 당한 사람은 내면에서 증오와 분노가 쌓여갑니다. 요즘 사람들은 직접적으로의 억압이 아닌 좀더 교묘해진 방법으로 타인에게 텃세를 부립니다. 이것은 차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차별은 지능적 교만의 모습입니다. 네편과 내편을 가릅니다. 이런 모습은 상당히 많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편가르기는 죄입니다. 이로인한 개인과 사회의 상처는 대단히 큽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학생들 사이의 명문대와 지방대생 사이에 존재하는 우월감과 좌절감의 문제들. 아이들도 생각보다 굉장히 교만합니다. 서로 차별하여 서로 기를 꺾습니다. 여러분들도 서로 선을 긋고 있습니까? 선 긋는것 좋아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교만과 오만의 모습이고 죄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고 사회 구조속에서 나도 모르게 교만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교만하지 말라 합니다. 교만하면 결과가 좋을 수 없습니다. 주제넘음의 삶은 실패로 치닫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교회는 교만하면 안됩니다. 주제넘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지금의 모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이기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주제넘음의 결과는 참담합니다. 주제넘음의 죄를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제넘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2~3절) 재판장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제넘음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6~7절) 주제넘는 삶, 선을 긋는 삶은 빨리 청산해야 합니다. 주위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삶을 그만두도록 권면해야합니다.
교만한 자에게 무시당해 억울함 가운데 있습니까? 그래서 화가나고 증오심이 생기고 복수하고 싶습니까? 그 마음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 마음으로 사는 한, 당한 우리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지금 교만한 자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삽처럼 해야 합니다.
75편 말씀은 73편 이후 쓰여진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아삽은 하나님 안믿는 자들이 잘됨을 보고 탄식했었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기도하는 중에 악한자의 종말을 알게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주위에 수없이 많은 교만한 자들을 보면서, 아삽은 기도와 말씀의 자리로 나아옵니다.(1~2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됩니다.(2절) 말씀보는 중의 깨달음이었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증오와 복수심이 아닌 ‘감사함’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깝다는 간증이 나옵니다. 아삽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1절)
우리는 이 모습을 잘보고 배워야 합니다. 내 주위의 교만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수 있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겸비한 모습으로 나의 참된 피조물로써의 내 온전한 모습을 깨달으며, 하나님을 모르고 주제넘게 행하는 그들을 불쌍히,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10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뿔은 다 베고, 의인들의 뿔은 높이 드신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교만에 증오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또한 나 자신도 주제넘음의 자리에 서지 않토록 조심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온전해질 때 하나님은 나와 우리의 뿔을 높이 들어주실것입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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