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미7:14-20). 2016.11.15

20161115

2016년 11월 15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습니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8-19)

미가서는 7장의 말씀으로 끝나게 됩니다. 보셔서 아셨겠지만, 미가서는 참담한 지경이 빠진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한 미가 선지자의 안타까운 외침으로 가득한 말씀입니다. 미가는 그 당시 누구도 감히 하지 못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첫 번째 예언자입니다.

무엇이든 첫 번째는 어려운 법인데 미가 선지자가 이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슴에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묵시를 받은 미가의 가슴은 영적인 간음과 온갖 불의한 죄 가운데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고 통곡하며 들개와 타조처럼 다니며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미1:8-9)

답답하고, 암울해서 그랬겠지요. 공무원들은 탐욕스럽고, 재판관들은 돈에 매수되고, 권력자들은 사리사욕만 채우고, 제사장과 예언자들조차 돈을 받고서야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니 왜 안 그랬습니까? 그뿐입니까? 부자들은 폭력적이고, 주민들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묵시의 사람이 어떻게 온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들으라 들으라 하면서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 듣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미가는 매우 외롭고 쓸쓸했을 겁니다. 7:1에서 미가가 그러지요. 자기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과일나무 같다는 겁니다.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갈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우면 이런 말을 다 하겠습니까?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외쳤지만 어떤 열매도 얻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가는 더는 물러날 곳도, 더는 절망할 것도 없는 상황까지 온 겁니다.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절망의 끝은 절망입니까? 희망입니까? 절망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희망입니다.

절망하고 싶어도 더는 절망할 게 없을 때 절망은 희망을 여는 문으로 변하고, 새롭게 일어나게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절망에서 최고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망할 때 완전히 망한 사람이 더 빨리 재기하고, 일어서는 겁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미가는 7:7에서 절망으로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재앙과 같고, 절망한 그의 마음의 지평에 새벽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햇빛처럼 하나님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7:7-8)

미가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희망의 뿌리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 어둠 속에서 빛이 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절망을 끝내는 이런 희망의 순간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서 미가는 절망 가운데서 다시 힘을 냅니다. 얼마나 감사한 모습입니까? 그러니까 미가서의 끝은 절망이 아닙니다. 멸망을 예언하지만 미가는 절망 중에서 함께 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품게 됩니다.

미가서의 마지막 구절은 그들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과 찬양으로 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애를 기뻐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인애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애와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유하시고, 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십니다. 인애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할 겁니다. 하나님이 인애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여기서 ‘불쌍하다’는 말은 자궁이라는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은 자기 배에서 난 자녀를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잘못했을 때 징계를 하시면서도 용서하시고, 그 죄를 깊은 바다에(19절) 던져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잘못과 허물이 있어도 거기에 매여 절망하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뻔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애하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바라보면서 일어서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같은 분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중에서도 충분히 희망을 열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신실하십니다.

신실하고, 인애가 많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마음 깊이 새기고, 바라보면서 낙심과 어려움의 순간이 올 때마다 무너지지 말고, 희망으로 다시 일어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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