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미6:6~8). 2016.11.14

20161114

2016년 11월 14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6-8, 개역한글)

오늘 이 말씀은 미가서의 핵심말씀이면서, 제가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처음 설교를 했던 말씀이기에 제게는 추억이 깃든 말씀입니다. 신학대학원 1학년 가을학기 때 전통 깊은 후암교회에 교육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부임한 첫 날 담임목사님이시던 한제호 목사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양 전도사님 다음 주 주일 오후 예배 설교를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주일 오후 예배에만 수백 명이 예배하던 전통 깊은 교회였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담임 목사님의 정중한 부탁의 말씀은 감히 토를 달수가 없었습니다. ‘예’ 하고 답하고 나왔습니다.

신학생으로 설교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설교 말씀을 어떤 것을 정해야 할지 고민되어 그 한주는 수업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수백 명의 교인들이 거의 북한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입니다. 그 당시도 사회적으로 힘들고 어수선하던 힘든 시기였습니다.  목요일부터 정신을 차려 소선지서를 무작정 읽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미가서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멈췄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하기 원하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사회가 불의하고, 도덕이 무너진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것 다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라고 명하십니다. 그 삶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생애 첫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다시 이 말씀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상황과 교회 상황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음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온 이스라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들을지어다’(6:1,1:2, 3:1) 묵시의 하나님의 사람 미가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이 생생히 들렸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하듯이, 그 당시 사람들도 듣지 않습니다.

이 들으라고 하는데 안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죄성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순종치 않으면서 예배와 제사를 드리면 백성의 도리를 다 한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정성껏 제물을 드리며 예배했어도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세 가지를 묻습니다. 1. 1년된 송아지 ( 양보다 훨씬 비쌉니다)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2.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3. 너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맏아들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점점 강도는 세어집니다. 이런 비싼 제물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은 그것만으론 안된다고 하십니다. 지극정성의 제물로 드리는 예배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미가선지자는 선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쁘게 받으시는 것을 알려줍니다.

정의와 인자와 겸손입니다.

1.정의.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일을 하지 않는것이 정의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도 다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의를 요구하십니다.

2.인자. 인자는 히브리말로 ‘헤세드’입니다. 사랑, 자비, 불쌍히 여김의 뜻이 있습니다. 인자를 사랑한다 함은 그 모습이 내 삶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3. 겸손.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즉 주제넘음입니다. 피조물로 주제넘음은 피조물이 주인인 양 행세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내어 드리며 나의 피조물 됨 (연약함)을 인정하는 삶은 가장 약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한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겸손할 때 우리는 낙심되는 상황이 와도 절대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절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지극정성’의 신자를 넘어 정의, 인자, 겸손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우들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늘 기도로 중보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애쓰는 우리 앞에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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