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아름다운 사람들(몬1:13-25). 2016.11.7

20161107

2016년 11월 7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9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13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몬1:8-14, 개역한글)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된 짧은 말씀 장입니다. 바울이 사적으로 감옥에서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인데, 그 서신의 내용이 믿음의 선배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아름답고 따듯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성경에 채택되었습니다. 3명이 등장합니다. 바울, 빌레몬, 오네시모입니다. 각 등장인물과 바울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바울과 빌레몬의 관계
바울의 전도로 빌레몬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서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자부심은 상당히 컸습니다.(5절,7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몬1:5, 개역한글)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몬1:7, 개역한글)

2.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종의 관계가 노예제도의 노예를 의미할 수도 있고, 계약 노동자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이기에 껄끄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사회에 속해 살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는 노예제도를 인정했기에 이 둘의 관계는 그 사회 속의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주님을 믿기 전 주인인 빌레몬에게 재산상 피해를 줬음이 분명합니다. 아마 재물을 훔쳐 도주했던 것 같습니다.(18절:불의함)

당시 로마 시대에는 종이 주인의 재물을 훔쳐 달아나는 죄는 사형에 처하는 죄에 해당합니다. 오네시모는 용서를 구하는 바울의 편지를 들고 주인집으로 돌아옵니다. 복음을 알게 된 후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인집으로 돌아오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물론 용서를 받지 못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3.바울과 오네시모의 관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오네시모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전도로 오네시모는 주님을 영접하고, 완전한 회심이 일어납니다. 바울의 인격과 성품이 감옥에서조차도 영혼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도 본받기 원합니다. 오네시모는 회심후 무익한 사람이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11절), 바울의 심복이 됩니다. (12절)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의 과거를 알고 놀랍니다. 바로 빌레몬과 얽힌 사연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선처를 구하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받는 빌레몬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기막힌 논리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영접해야 함을 씁니다.(17절:영접) 바울의 둘에 대한 확신이 주님 안에서 그만큼 컸기 때문에 이런 확신의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안에서 빌레몬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오네시모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믿음이며 영적인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새벽, 이 세명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복음안에서의 인격과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따듯한 사랑을 배우기 원합니다. 요즘처럼 믿음없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용서라는 주제로 볼 때도 우리는 본받을 것이 많습니다.(용서 해줘야 하고, 중재해야 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고) 오네시모 처럼 우리는 늘 부족하기에 언제나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 나아와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용서를 중재하는 삶, 화평을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빌레몬처럼 용서해주는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큰 용서의 빚을 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히 그리스도인 형제들을넉넉히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따듯한 아름다운 모습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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