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믿음 (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10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로 보내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이 좋은 주일 아침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구절이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우는 걸로 끝내지 말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말씀이 주는 무게감이라도 새롭게 다가와서 여러분들 신앙생활의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 4가지 주제 (멸망/하나님 사랑/믿음/영생) 중 오늘은 세 번째 주제인 믿음입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 이후 나온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성취를 이룬 사람이지만 마음속에 한편으로 뭔가 답답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오한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이 있음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성자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우리는 느껴야 하고,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하고, 그분이 주신 구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여정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주실 것을 다 주셨기에 더 이상은 할 일이 없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 많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귀한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오게 하셔서 십자가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건 앞에 남은 것은 우리 인간이 보여야 할 반응만 남아 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앞에 놓고 우리는 믿을건지 못 믿고 멸망의 길을 갈 건지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처럼 이 십자가 구원의 사건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건을 통해 보여주신 이 헌신적이며 전폭적인 사랑 앞에서 우리는 그 사랑을 더욱더 깊이 깨닫고 큰 믿음 갖는 점검의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진실로 풍성한 구원의 삶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믿고 따를 때 그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인간이 인간을 최고로 아는 시대에 하나님을 알리고 전도한다는 것은 실로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믿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알리며 전도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믿는다는 것이 기적인 시대입니다. 불신이 팽배한 시대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믿는사람들을 정상취급 안 하는 시대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믿음을 세뇌된 허상으로 취급합니다. 하나님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 운운합니다. 요즘은 믿음을 뇌의 작용으로 연구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세태를 보면 실로 기적의 사건입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서 이루어진 은혜의 사건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이 씨앗을 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진실하게 신앙생활 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냥저냥 신앙 생활하며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요소는 세 가지입니다. 믿음은 지,정,의(지식/감정/의지)로 이루어지며 어느 한가지라도 부실하면 온전한 믿음, 능력 있는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믿음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지식 요소
지식은 믿음의 기반입니다. 내가 믿는 것에 대한 앎 없이 무작정 믿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마음대로 맹목적으로 지식기반 전혀없이 믿으면 나의 하나님은 내가 만든 허상의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잘 알려진 유명한 말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믿으려면 이 첫 단계인 지식의 요소를 강화해야 합니다.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성경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기 어려워하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에 대한 정보의 기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계속 역사 속에서 관계하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고 계십니다. 초월자 되시는 분이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관여하고 계심을 성경은 그 역사를 통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근거가 있기에 기독교 신앙은 세상 사람들의 허구라는 의심을 벗어난 유일무이한 종교가 되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가 되심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됩니다.
2. 의지의 요소(선택의 자유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에 대한 동의)
우리의 믿음은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지식만으로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알게 된 것을 인정하고 동의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내가 알게 된 것을 수긍하고, 받아들임으로 믿음이 쌓여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후 그 구속의 십자가 사건을 믿을지는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 의지는 인간의 의지입니다. 성경사실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잘난척할 필요 없습니다. 지식적으로 성경에 대해 박식해도 나에게 받아들일 의지가 없으면 성경은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게 되어 나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3. 감정의 요소 (지식과 의지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용)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여기에 감정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나의 기분, 내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 감정을 통과해야 믿음이 생길 뿐 아니라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감정이 망가지면, 지식도 소용없고, 의지도 소용없습니다. 예를 들어 맞선을 봤는데 상대방이 인물도 괜찮고, 조건이 괜찮아도, 내가 맘에 끌리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감정조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감정에서 실패하면, 믿음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좋은 감정으로 관계하며 살면 믿음도 성장합니다. 나쁜 부정적 감정으로 살면 하나님도 나에게 아무런 힘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감정이 내 믿음을 막고, 내 믿음을 없애버리기까지 합니다. 주일 아침 싸운 후 교회에 오면, 부정적 감정들이 모든 은혜의 통로들을 막아버립니다. 찬양도 설교도 다 안 들어오게 됩니다. 감정조절에는 지혜와 마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감정조절에 성공해야 믿음 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이 세 가지 요소 (지식, 의지, 감정) 중 어느 하나라도 조금씩 결손 되면, 내 믿음도 약화합니다. 이 세 요소가 충분하게 작용할 때 나의 믿음은 매일의 삶 속에서 더욱더 강해지며 나의 영성은 강해지게 됩니다. 이렇듯 믿음은 내 평생의 싸움입니다.
오늘은 믿음을 막는 부정적 감정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 부정적 감정들을 극복함으로써 믿음의 위대한 사실 앞에 가까이 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의심
의심이 생기면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고,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절대 덮어두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됩니다. 절대로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반드시 해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답이 있으십니다.
의심의 요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표징이 잘못되어 있을 때
예를 들어 내가 하나님을 산타클로스 같은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내가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나의 신앙 전반에 걸친 회의와 하나님에 대한 실망과 하나님이 정말 계시기는 한 것인지? 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에 대한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 의심은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으로 답을 얻고 해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신앙의 내용을 모를 때
신앙의 내용이 없이 오로지 내 감정에 이끌려 신앙 생활하는 경우가 또한 문제가 됩니다. 신앙의 핵심적 진리가 모자라면 내 감정이 부정적으로 흔들릴 때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이 문제 또한 내가 올바른 지식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갈 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상처가 많을때
삶의 수많은 상처가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긍정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믿음의 내용 없이 상처만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강력한 저해요인으로 작용합니다.
4) 과학적인 세계관만 고집할때
과학적 세계관은 폐쇄적 세계관입니다. 과학적 근거만을 믿음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신비한 은총 속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의심의 요소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제대로 알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놀라운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2)실망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나는 낙심하고 실망합니다. 이 실망의 마음은 내 믿음을 가려버립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문제는 놀랍게도 실망의 범위는 너무 넓다는 데 있습니다. 실망하면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가려면 이 실망의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남편이 실망스러워지면 괜히 목사님께 화가 나고 그 화남은 하나님께 대한 화남으로 이어져 교회를 떠나게 되기도 합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실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실망에 잘 대처해야 영성이 진실해지고 깊어집니다.
인간은 서로 실망하게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더 하나님께 나아가는 동기로 삼으셔야 합니다. 상대방만 나에게 실망을 줍니까? 나도 상대방에게 실망을 주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실망을 빌미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신앙을 떠나는 행위는 실로 어리석습니다. 인류역사는 실망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3) 불안과 고난
인간은 불안할 때 내면의 옥에 갇히게 됩니다. 고난 속에 있을 때도 거의 그렇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부정적인 요소들 (의심/실망/불안과 고난)은 믿음을 방해합니다. 이렇듯 감정의 문제는 믿음 생활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의심의 사건 속에서, 실망스러운 사건들 속에서, 불안과 고난의 사건들 속에서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으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는 조작된 허구가 아니기에, 감정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역사에 근거한 믿음이기에 우리는 감정이 우리를 무력화시키려 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은 태초부터 ‘들은 바요, 만진 바다’라고…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1:1) ‘ 우리의 믿는 이 믿음은 사실에 근거한것이기에 우리는 감정을 넘어설 수 있으며, 감정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C.S Lewis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야기 합니다.
‘기분은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에 반기를 들게 되어있어 바로 이런 이유로 믿음이 필수 덕목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분을 어디에서 하차시켜야 할지 모른다면 건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날 날씨나 소화 상태에 따라 신념이 좌우되는 줏대 없는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믿음은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역사적 사건에 기초한 것입니다. 인생에 몰아치는 역풍이든 순풍이든 굳건히 하나님 믿는 믿음으로 굳세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삶의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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