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5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73:17-28)
어제 시인은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시고 그냥두시는지 답답하고, 속상해했음을 봤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은 시인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부패한 삶의 현실은 우리를 뒤흔들어 불만과 낙담과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안 보이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부조리하고 부패한 세상 속의 삶을 지나야 하기에 여기에 대한 우리나름대로의 분명한 답을 갖고 이 상황들을 확고히 대처하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시편 73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악인의 형통함에 괴로워하던 시인의 결과는 오늘 말씀에서 보셨듯이 행복한 결말입니다. 오늘 시인은 갈등과 속상함, 답답함 모두 해결 받음을 봅니다. 상황은 계속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지만, 그들의 종말이 멸망임을 깨닫기에 시인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의 감사와 감격으로 찬송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어떻게 시인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생겼을까요?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시인처럼 흔들리고 아파하는 시간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마지막 본문에서 시인은 악인이 형통한 이 상황을 고민하고 깊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물었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이 옵니다. 17절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17) 여기서 성소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성소는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드리는 곳입니다. 이 장소는 교회처럼 물리적인 장소일 수도 있고 예배하고 기도드리는 내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내 마음속의 성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성소에 들어가 묻고 아뢸 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한 것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18~19) 아마도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보여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보여주시며, 시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위로하시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우리도 똑같은 답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형통함은 유한한 것입니다. 세상의 형통함으로 하나님을 모르게 되거나, 떠나게 되면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심판입니다. 세상의 부패하고 퇴폐한 문화와 어두운 정치 현실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가치관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병들게 합니다. 우리는 이 시인처럼 하나님의 성소로 나아와 묻고 또 물으며, 하나님의 답을 각자 받으셔야 합니다. 그 답은 오늘 시인이 받은 답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 매몰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의 초점은 늘 하늘의 아버지께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며 오늘 시인처럼 하나님의 답을 얻게 되면, 그들의 종말은 심판의 참혹한 형벌이기에 그들이 부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불쌍하게 보이는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시인은 이것을 못 봤던 자신을 회개합니다. 짐승같이 우매 무지했던 자신을 회개합니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의 짐승이오나 (시73:21-22)’ 눈이 밝아짐을 영안이라고 합니다. 영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향한 눈이 밝게 크게 떠져야 합니다. 우리도 영안이 떠졌을때 과거를 돌아보면 부끄러워할 것 투성입니다. 하나님께 실로 죄송한 것이 너무나도 많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내가 끌어안고 끙끙거리면 안 됩니다. 그것에 대한 판단을 세상문화가 만든 가치관을 갖고 사는 세상사람들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갖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해결함을 받을 때 우리는 든든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오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73:23)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오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73:25)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73:27)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다’(시73:28) 우리에게도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지만 우리 또한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성소로 나아와 은총 받고, 오직 믿음으로 축복받으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의 축복받은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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