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9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7-10)
이스라엘은 앗수르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작은 변방 나라입니다. 그런 작은 나라의 한 사람이 지금 앗수르라는 나라 수도에 와서, 자기 민족이 믿는 신의 이름, 즉 하나님이 이르신 말씀이라며,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라라”(4절)고 선포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이방 민족 앗수르가 이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5절에 보면 큰 성읍 니느웨가 즉각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왕부터 백성 그리고 짐승까지 물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니느웨는 이것을 앗수르 제국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는 변방 약소국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로 무시하거나, 민심을 소동케한다고 여겨 요나를 잡아들이거나, 혹은 설령 자신들의 죄악이 있음을 깨달았어도 하나님께가 아닌,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달려가 묻고 엎드렸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요나는 사흘을 걸어야 다 돌아볼 수 있는 성을 다 돌지 않고 하루 동안만 전합니다. 하나님이 전하라고 해서 전하기는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니느웨가 오히려 심판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4장에 요나가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이 심판을 거두신 것을 보면서 매우 싫어하는데 어느 정도로 싫은지 생명을 거두어 달라며 하나님께 성내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을 원했다면 아마도 심판의 메시지와 함께 절박하게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많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민족의 구원을 놓고 절박하게 회개를 호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니느웨는 변방의 작은 나라의 한 사람의 메시지에, 그것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체적인 회개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며 구원을 받은 것처럼, 지금 니느웨가 회개하며 건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9절에 니느웨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라고 믿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심판을 거두시고 우리를 살리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을 내리시더라도 그 심판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죄에 대한 깊은 각성과 돌이킴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었지요.
우리는 회개하면 당연히 심판을 면하게 하시고 구원해 주셔야 한다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구원은 우리가 요구해서 우리 뜻으로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 뜻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요나서 2:9에,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하 12장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대해 용서하셔서 다윗을 죽이지 않으시지만 밧세바와 동침하여 낳은 아이는 죽이십니다. 다윗은 아이가 죽기 전 7일 동안 땅에 엎드려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22절에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아이가 죽었을 때, 겸손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하고 음식을 먹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심판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달랐어도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당시는 징계하셨지만, 이후 하나님은 솔로몬을 주시고 신실하게 여전히 다윗을 인도하셨습니다.
진노를 거두실 줄을 누가 알겠느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들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그 주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죄를 깨닫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죄 앞에 우리를 노출시킬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죄를 알게 해 주셔서 두렵고 떨림으로 영혼 깊이 정성을 다해 죄에서 돌아서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치리 또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고백하며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인도하실지라도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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