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25. 주일설교. 신자의 변화 5: 연합, 함께하는 삶(요17:21~23). 양은익 목사


신자의 변화 5: 연합, 함께 하는 삶(요17:21~23) 

지난 몇 주간 살펴 본 주제는 신자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신자 신분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교회 출석 이상의 깊은 뜻이 있고 삶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함을 보고 있습니다. 생각의 변화, 언어의 변화(언어는 내 안에 있는 것이 표현되는 수단이기에 내 성품과 내 됨됨이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어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내 언어도 창조의 능력이 있는 언어를 써야합니다) 힘의 변화, 지배권의 변화를 살폈습니다. 공중 권세자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 인격과 삶의 태도가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삶은 영광을 체험하는 삶입니다. 건성으로 교회 참석으로 만족하는 신앙 생활을 벗어나, 반드시 변화되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살필 변화는 개인에서 교회로, 홀로 사는 삶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삶(연합의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우리의 소속과 삶의 터전이 바뀌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시작과 이 변화는 함께 시작되어야 합니다. 개인이었던 내가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연합하여 하나되는 공동체의 삶은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시작과 동시에 교회에 소속됩니다. 일부에서는 교회에 극도로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 홀로 신앙 생활하는 무교회주의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고충과 실망과 고민들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과는 먼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초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실망하여 일시적으로 교회를 떠날 수는 있지만 결국은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 개인을 개별적으로 부르십니다. 일단 부르신 후에는 교회공동체(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여 연합하여 하나로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 각 개인 각자에게, 교회를 만들어가는 소명과 책임을 주셨습니다. 성령적 의미에서 나의 신분,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12:27)’ 예수님을 몸으로 우리는 지체로 하나되라고 부르셨습니다. 신자가 된 이후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신앙적 의미에서(영적인 의미에서) 개인은 없습니다. 요즘 시대는 개인이라는 주체가 가장 중요시되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차지하는 위치와 위상이 모호한 시대입니다.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는 내 개인은 존귀한 존재인 동시에, 주님 몸을 이루시는 한 공동체의 지체임을 동시에 잊으면 안됩니다.

의사인 폴 트루니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둘이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신앙인의 신분에 대한 중요한 말입니다. 성도는 홀로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소속되어 공동체로 연합하여 하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6세기 성직자였던 십자가의 요한은 말했습니다. ‘홀로 떨어진 고요한 영혼은 홀로 타는 석탄과 같다. 그 불길은 식는 일만 남았다.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홀로 떨어져서 신앙생활하면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식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함께 있을 때 영혼이 살아나는 자로 주께서 부르셨습니다. 각자의 교회에서의 본분을 잃지 않아야합니다.

교회를 떠나 홀로 신앙생활하는 분들은 다 각자 이유가 있습니다. 목회자와의 갈등, 교회 내부의 여러 불만과 불화들,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개인적인 성향이 교회와 안 맞아서 등등입니다. 이 모두,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회복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말씀을 주신 주님의 요청입니다. 주님의 분명한 메세지로 반드시 수용해야만 합니다.

오늘 주님은 신앙인의 하나됨(연합)에 대한 기도를 하십니다. 하나됨은 영어로 only one 이 아니고 Unity 입니다. 주님은 모든 신앙인들이 주님을 중심으로 Unity(연합,함께 함)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주님의 마지막 기도가 있는 유명한 말씀 장입니다. 우선 주님자신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1~5절) 그리고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6~19절) 마지막으로 미래에 믿을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20~26절) 이 기도에서 주님의 관심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이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것과(21절) 둘째, 그렇게 살 때 서로 사랑하게(26절) 해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 주님의 마지막 기도에 담겨있는 하나됨, 연합함은 바울의 가장 중요한 사상입니다. 바울은 모든 서신 말씀을 통해 서로 함께 이해하고, 관용하며 살아가야 함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20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22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17:20-23, 새번역)

나는 이미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으며, 앞으로도 알리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17:26, 새번역)

이 기도문은 주님의 유언의 마지막 기도문이기 때문에 유명하고 주님이 마지막으로 온 혼신을 다하여 드린 기도문이기에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처럼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또한 교회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기도가 과연 있을까요?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보십시오. 일반 동호회나 조기 축구회들이 보여주는 상호 신뢰와 동지애는 교회보다 훨씬 났습니다. 그들은 서로 어려운 일 생기면 발벗고 나섭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한심하게 보고 냉소합니다.

오늘 기도에서 주님은 하나됨(연합)을 놓고 계속 기도하십니다. 이 하나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구와 하나되는 것입니까? 교인끼리 하나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하나됨(연합)을 말씀하신 하나됨의 의미는 두가지입니다.

1.사도들과 하나됨(연합)
사도들과 영적인 영합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미래에 믿게 된 우리가 예수님 당시 사도들이 체험했던 수 많은 기적과 주님 부활사건과 사도들의 능력을 똑같이 영적으로 하나되어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기를 기도하신겁니다.

2.성부, 성자와의 하나됨 (연합)
신자 하나 하나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하나되는 기적같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 기도의 하나됨의 의미는 우리 성도의 인간끼리의 연합 이전에,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과 하나됨 (연합)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끼리의 연합은 불가능함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인 자아 위주의 자존감 때문에(인간의 죄성)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영적 힘과 에너지가 없으면 서로가 연합하여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조그만한 일에도 반목하고, 분열하고, 다투는 존재가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도가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는 ‘성격차이’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복음의 진리’와 ‘예수의 생명력’이 없으면 하나됨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하나되지 못하면 교회는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은혜받아 우리가 ‘복음의 진리’와 ‘예수의 생명력’으로 꽉 차게 될 때 우리는 연합하여 하나 될 수 있고 교회는 큰 힘을 발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이미 나타나고 증명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애씀을 주님께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욕설과 비난과 지탄이 줄어들 것입니다. 나의 판단, 나의 기분, 나의 상황이 우선된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되려고 부단히 애쓰는 교회 공동체에게 주시는 축복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홀로 떨어져 출석만 하는 교회 생활로는 홀로 타는 석탄처럼 식는 일만 남았습니다.

로마시대 한 관리의 보고서 내용입니다.’그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서로를 무조건으로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이상한 집단이다’ 2000년 전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신분 차별을 없앤 공동체 생활을 해낸 것입니다.

교회는 그 존재 자체로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자체가 전도적 존재입니다. 전도가 안되는 것은 우리가 교회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가 안될수록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교회는 현재 뿔뿔이 훝어져 있습니다. 모두 큰 교회를 선호합니다. 한쪽 구석에서 잠깐 예배만 드리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시간도 뺏기지 않고 교회 다니는 것을 선호합니다. 주목을 안받아서 편합니까? 작은 교회는 나의 사소한 것까지 노출되어 불편합니까? 내가 간섭 안받고 편한것이 축복입니까?

작은 교회에서 서로를 일일이 챙겨주며 기도를 나누며 교회 생활 하는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편함 위주의 교회 생활은 교회의 기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교인된 우리가 보여 주는 것들이 세상 사람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교회 자체가 전도를 막는 지금 현재의 우리 모습까지 오게 된것입니다.

신분이 변화된 교인 한분 한분의 신앙 생활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신분이 변화된 우리가 믿음으로 연합하여 날로 날로 변화된 모습을 보일때 우리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더불어 연합하여 하나될 때 하나님은 큰 축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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