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3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6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시71:14-16)
사람들은 하나님이 시인을 버렸다고, 하나님의 구원은 없다고 하나님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시인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본문 6절과 14절에서 시인은 오히려 항상 주를 찬송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다른 어떤 때보다도 더욱더욱 주를 찬송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좋은 일이 생겨서 기쁨을 이기지 못한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오는 상황이 아닙니다. 기도제목들이 그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대로 이루어져서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드는 상황이 아닙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었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기쁨의 감격으로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며 찬송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보는 형통이 이어지면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뻐하며, 또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생각으로 더욱더욱 찬송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의 상황은 사람들이 볼 때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닌 고난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시인을 보며 하나님이 있지 않거나, 혹시 있다면 버렸다고 할 정도로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는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어떤 때는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하나님께 따지기도 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며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로 구원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웃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웃는다는 표현은 상황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 평화와 확신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영광으로 영이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찬송입니다. 시인은 종일토록 찬송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그 찬송이 얼마나 넘쳤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종일 전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웁니다. 시인도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지만 더 나아가 그 슬픔 위에 찬송의 미소를 덧입힙니다. 고개가 숙여집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고난을 찬송의 삶으로 승화시키며 사시는 한 분을 소개합니다. 건축사업을 하시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조립식 건물 나사가 풀려있는 줄 모르고 건물에서 일하다 떨어지셔서 하반신을 못 쓰게 되신 분입니다. 치료 중, 다리를 못쓰게 될 거란 걸 아시면서도 찾아가 뵐 때마다 늘 환하게 웃으시며 맛있는 음식도 사 주시고, 휠체어 타고 여기저기 당당하게 다니시는 모습을 뵈며 위로를 드리려고 갔던 제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으며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일하시면서 틈틈이 척추 장애인을 찾아가 계단식 집을 고쳐주시며 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늘 행복하시다는 그 분을 생각할 때마다 그 삶의 내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고난 가운데에서도 찬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든든한 반석이요 피할 요새이시며, 자신을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택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 고백은 시인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했던 시간들 속에서 녹아 나온 간증입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겠습니까? 지금 있는 고난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시인의 삶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심을 신뢰하며 찬송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되고 영원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없을지라도 혹은 사라져 버려도 하나님이 계시면 소망은 여전히 시인 안에 살아서 시인을 찬송케 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이면 슬픕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연히 울게 되지요. 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이신 주님 바라보며, 슬픔 위에 소망으로, 눈물 위에 찬송으로 더더욱 우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 61:3)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