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0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9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 20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69:19~21)
이 시편에는 참 위태위태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물론 여기서 시인은 잘 견디고 있지만 만약에 이같은 상황을 내가 당한다고 하면 얼마나 위험 천만한 상황이겠습니까? 비유적 표현이지만 수렁(14절)과 깊은 물에 빠지고(14절), 큰 물(15절)과 깊음 어둠(15절)과 웅덩이(15절)이가 덮치고, 비방과 근심거리가 충만하다면 마음 상하고, 힘 빠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와같은 캄캄한 시기를 기독교 전통에서는 ‘어둔밤’의 시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캄캄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둔밤의 시간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밝은 날, 기쁜 날, 성공의 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둔 밤의 시기가 있습니다. 어둔 밤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 옵니다. 내적인 감정으로도 찾아오고, 외적인 힘든 상황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우리를 몰고 갑니다.
어둔 밤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우리 신앙에 타격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급속히 무너집니다.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예배 하는게 너무 힘듭니다. 의무감만 남고 기쁨과 열심은 사라집니다. 기도도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어둔밤의 시기는 꼭 거쳐야 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들풀 같이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항상 늠름 할 수 있겠습니까? 수렁에 빠지고, 큰 물이 덮치면 마음 상할 수 밖에 없고, 힘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꼭 기억해야 되는 것은 어둔밤은 나를 깨우고, 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이끄심의 수단이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든 어둔 밤의 시간들을 겪으면서 정화되고, 수리되고,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겉 멋을 버리고, 진실해 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콩나물은 햇빛을 주지 않아야 자랍니다. 어둠을 견딘 콩만이 노오란 콩나물로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영적인 성장도 영혼의 어둔 밤을 거칠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둔 밤을 겪고나야 영적인 세계가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둔 밤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긍휼하심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둔 밤 동안 우리의 영혼이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인처럼 주의 응답과 구원을 위해 더 깊게 기도하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놓치 않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사42:3) 하나님은 작은 희망이라도 가슴에 담고 새 불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13절.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침묵을 깨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은 절대 무모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모리아 산 제단에 묶여 있던 이삭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한 호흡의 찰나에서 그 틈을 깨고 아비 아브라함의 칼에서 구원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촘촘한 우리의 절망과 웅덩이와 깊음을 뚫고 구원해 주십니다. 어둠밤 지날 때 낙망하지 마십시다. 어둔 밤은 하나님께서 지나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어둘수록 더 깊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나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자신을 수리하시고, 리모델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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