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7. 주일설교: 축복하는 삶1(민6:22~27). 양은익 목사

축복하는 삶 1:(민6:22~27)

오늘부터 몇 주간은 축복하는 삶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서로에게 시원한 축복이 넘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은 교회에서 많이 쓰는 언어입니다. 성도의 마음속에는 늘 축복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축복은 우리는 받는 것만 생각하지만 축복이란 한자의 뜻은(빌祝, 복福) 나를 통해 복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Benediction이 축복입니다. 어원인 Benedicere는 칭찬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축복은 누군가를 좋게 봐서 칭찬하고, 기뻐하고, 복을 빌어주는 선하고 고은 행위입니다.

이 선하고 고은 행위들이 우리에게 의외로 많이 없습니다. 나를 통해 축복하는 삶이 일어나야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축복받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첫번째로 가르쳐 주신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 작업을 하시면서 계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창1:4,10,12,18,21,25,31) 매사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샘플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삶의 자세는 우리가 매 순간 배워야하고 가져야할 우리 신앙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매번 “참 좋다”, “참 감사하다” 하면 그 삶은 축복받은 삶입니다.

지난 주일 살펴 본 냉소하는 삶은 믿음, 소망, 사랑 모두를 앗아갑니다. 우리는 늘 탄성을 내며 감탄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축복의 샘물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즉 이 세상을 축복하라는 축복의 사명자 역할을 감당하려면 내 안에 기쁨,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성경이 어느 정도로 축복을 요청하는지 보십시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28), “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2-13) 만만치 않는 요구를 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12:14)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축복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축복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저주 대신 축복이 일어나면 악의 악순환이 끊어지고 수많은 선한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1장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렇게 보는 모든 것을 좋게 보고, 기쁘게 보며, 축복해 주는 삶을 살아 악을 이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6장의 아론의 축복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축복하는 삶은 아론만의 소명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제사장의 직분으로 축복해 주는 삶으로 이 땅의 악과 저주를 이겨 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볼 때 좋게 보십시오. 그들이 저주하고 욕해도 미워하거나 징그럽게 보면 안됩니다.

내 안에 불평과 불만이 많습니까? 칭찬하는 마음이 더 많습니까? 각자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성과 관계된 것 이기에 중요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삶을 살고 있다면 반성하고 회개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감정과 마음은 부정적인 쪽으로 감정의 발산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증명할 수 있냐? 물으시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쓰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연구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감정적인 단어가 430개 정도 됐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72%(310개 정도)는 원망과 분노같은 부정적인 단어였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한국 사람들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은 좋게 보는 것 보다, 안 좋게 보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부정적인 언어들은 참담하다, 한 맺힌다, 역겹다, 배신감든다, 경멸한다, 증오한다, 열등감 든다, 억울하다, 비참하다, 절망한다 같은 단어들입니다. 이런 단어들이 우리에게서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그만큼 우리의 상황이 녹녹치 않은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괜히 참담하고 한이 맺히겠습니까?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긍휼히 여겨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사고와 감정이 체질화되고 습관화되면 안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축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감정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 상태를 잘 살펴보고 또 고쳐 나가기 위해 감정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내 감정이 늘 맑을 수는 없지만 늘 흐리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 합니다. 내 감정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의 안좋은 감정(부정적인 감정)은 자꾸 정당화시키기 보다는 고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죄성으로 인해 상대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을 먼저 보게 되고,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 상대방을 판단합니다. 축복의 사명자로써의 삶은 이런 자세로는 불가능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밝은점, 좋은점, 귀한 모습등을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했습니다. 집에서부터 화목해야 합니다. 집에서부터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밖에서도 축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했습니다. 안에서 잘해야 밖에서도 잘합니다. 바가지란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 불평, 싫은소리 입니다. 바가지도 한 두번이지 습관화되면 안됩니다. 성경에도 바가지 긁음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잠19:13,21:9,21:19, 25:24, 27:15) 미드얀(mid-yan)이라는 말을 ‘바가지 긁다’로 번역한 것입니다. 미드얀의 원래 뜻은 다투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집 안에서 다투는 한 축복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잠언19:13
(공동번역) 미련한 아들은 아비의 화가 된다. . 아내가 바가지를 긁으면 천장에서 비가 샌다.
(개역개정)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 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잠21:9
(공동번역) 바가지 긁는 아내와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다락 한 구석에서 사는 편이 낫다.
(개역개정)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축복하고 좋게 보고 기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기술이고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께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제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실패자였습니다. 주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부르시고 축복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후에 베드로는 이런 주님의 축복과 사랑에 너무나 감사해 합니다.

가깝다고 부족한 게 왜 없겠습니까? 약점도 있고, 부족한 게 있지만 좋은 점도 반듯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걸 먼저 보고 인정해 주고, 축복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려면 내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영성이 맑고 충만한 은혜로 가득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한 마음이 있을 때 악한 자는 할 수 없는 타자를 향한 축복이 가능해 집니다. 축복하는 삶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론의 축복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늘 선포되기를 바랍니다.

24절: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내리시고 당신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25절: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미소 지으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26절: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형통케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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