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31. 주일 설교. 삶의 극복4:냉소를 이겨내라(전1:1~11). 양은익 목사

삶의극복 4: 냉소를 이겨내라(전1:1~11)

오늘은 삶의 극복 4번째 시간으로 ‘냉소’(冷笑)에 대한 문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삶의 극복에 대한 말씀은 오늘로 마칩니다. 냉소의 사전적 정의는 쌀쌀맞은 태도로 은근히 비웃는 것, 비꼬는 말, 조롱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내 마음의 태도, ‘너나 잘하세요’와 같은 태도입니다. 이것은 좋지 않은 태도이고 우리 신앙인들이 극복해야만 하는 태도입니다. 한국 사회는 특히 더 냉소가 많은 사회입니다. 이를 극복해야 우리가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이 냉소의 태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계속 속임 당하고, 당한게 많게 되면 냉소가 내 삶의 성품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농담같은 진담입니다. 똑딱한 여자는 예쁜 여자를 못 이기고, 예쁜 여자는 운좋은 여자를 못 이긴다고 합니다. 성실한 남자는 학벌 좋은 남자를 못이기고, 학벌 좋은 남자는 빽좋은 남자를 못 이긴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겪으면서 냉소적이 되가는 것입니다.

냉소의 이유는 사람 수 만큼 많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한 개인이 냉소적으로 변하는데는 개인적인 성향도 영향을 줄것이고, 사회적인 영향도 상당히 크게 작용합니다. 내가 최고라는 허위의식이 들어오면 주위의 모든 것이 다 싫고 하찮게 여겨집니다. 자기 비하에 빠져도 냉소적이 됩니다. 사회가 정의롭고 공의로우면 냉소가 적어지지만 불의한 사회에서는 냉소적인 사람이 많아집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 사회에 대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빗대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조롱사회”라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안하고 조롱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는 것입니다. 존중, 존경같은 귀한 가치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병든 사회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그럴만하다고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냉소가 없는 사회 분야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사람에 대한 냉소도 대단합니다. 교회에 대한 냉소도 많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냉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면서 신앙인들이 냉소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불일치하는 삶을 삽니다. 교회에서는 은혜 받는데 직장과 사회에서는 냉소하는 태도를 갖는이중 생활을 하게 됩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그 당시의 교회를 보면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했으나 교회는 지금 포도주를 물로 만드는 더 큰 기적을 행하고 있다”. 심각한 냉소입니다. 신앙인중에도 교회에 대해 이런 냉소의 태도를 보이며 교회를 떠납니다.

오늘 본문 2절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5번이나 헛됨을 강조하고 탄식하며 전도서를 시작합니다. 전도서의 지혜자는 굉장히 냉소적입니다. 전도자가 경험한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냉소적입니다. 자연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질서가 잡혀 문제없지만(4절 이하. 땅. 해.바다. 강) 인간의 세상 질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고했는데 모든 수고가 헛될 정도로 모순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전7:15. ‘나는 덧없는 세월을 보내면서 세상 만사를 다 겪어보았다. 착한 사람은 착하게 살다 가 망하는데 나쁜 사람은 못되게 살면서도 고이 늙어가더구나. 그러니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공동번역). 착하게 살지 말라고 합니다. 지혜자가 살면서 느낀 느낌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8:12~14절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잘 되어야 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 몰라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사는 악인은 하루살이처럼 사라져야 될 줄은 나도 확신하지만 땅 위에서 되어 가는 꼴을 보면 모두 헛된 일이다. 나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착한 사람이 받는가 하면 착한 사람이 받아야 할 보상은 나쁜 사람이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이 또한 헛되다고 한 것이다.’(8:12-14.공동번역).

전도서 지혜자의 헛되고 헛되다는 이 고백을 우리도 실제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전도서가 쓰여진 년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기의 사회 배경이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냉소 가득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와 비슷합니다. 전도서가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공평과 정의와 윤리가 무너진 헛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냉소가 가득한 사회에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냉소는 모순된 사회를 살 때 가장 간편한 태도입니다. 모순된 것을 본 후 적극적으로 해결점을 찾으려 하지 않고 ‘너나 잘하세요’하고 끝내기 때문입니다. 고쳐 보려는 노력을 안해도 되니 편합니다. 위험하고 퇴행적이고 방치하는 태도입니다. 아무리 정당한 냉소라도 냉소는 절대 오래 계속하면 안됩니다. 제 삼자 입장에서 관망만하고 냉소하는 태도를 반복하면 내 성품이 되버립니다. 삶이 왜곡됩니다.

신앙인들은 자신의 모습이 지금 어떤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앙인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와 믿음, 희망(소망), 사랑이 생기는 것입니다. 냉소가 내 안에 밀려오면 내가 받은 귀중한 은혜(믿음,소망,사랑)들이 내 안에서 다 소멸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내 안에 부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냉소의 큰 재앙입니다. 믿음이 사라진 자리는 끊임없는 의심이 자리잡고, 은혜로 받은 희망(소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대신 자리잡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미움이 가득차고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날선 말이 난무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신자의 냉소보다 신앙인의 냉소가 더 위험한 것입니다. 냉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지혜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 상황에 굴하지 않고 싸웁니다.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내 마음에 이르기를 /나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전 1:16,2:1,3:17,7:23 I know to myself)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냉소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비법은 없습니다. 냉소적인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받아들임의 힘을 믿으십시오. 나쁜 놈이 잘되는 것을 어떻할까요? 위선적인 목사들이 많은 것을 어떻할까요? 내 형편과 조건은 왜 이렇게 보잘것 없는 것입니까? 왜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그렇타고 계속 냉소만 하실 것 입니까? 그것은 자기 학대입니다.

냉소의 상황은 대부분 운명적입니다. 일단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주님도 죽음의 잔을 옮기고 싶으나 하나님 뜻이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처해있는 이 모순 투성이의 삶의 상황과 조건도 받아들여야 내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이 받아들임은 위대한 일입니다. 처한 상황이 분명 힘든데도 거칠고 사나워지지 않고 상대방에게 기쁨과 온유함과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모든 것을 이미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들풀 교우들 모두 냉소에 짖눌리지 말고 받아들임으로 치유와 변화가 일어나는 이 위대한 기적들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받아들이기 위해 전도서 지혜자는 3가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한신뢰/ 작은 일상에 기뻐하기/ 자기 본분에 충실하기입니다.

1.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7:13) 굽게 하신것도 하나님이시니 바르게 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이 내 굽음을 통해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고 인도하시고 나가고자 하시는지 신뢰와 순종의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 때에 내 힘으로 안되는 것(굽은 것을 펴려는)이 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믿음을 포기하고 냉소를 유지하는 것은 자기 학대이며 신앙없음 입니다.

중세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부인의 부인이다. “(God is the denial of denial) 굉장한 하나님에 대한 정의입니다. 우리의 냉소, 이 모든 모순을 뒤엎어 버리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과 신뢰는 냉소 가득한 사회에 사는 신앙인에게는 필수 입니다.

2.작은 순간들을 기뻐하라
냉소가 크더라도 내 사랑과 기쁨과 감사가 크면 냉소는 맥을 못춥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을 좋게 보아 주시니, 너는 가서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너는 언제나 옷을 깨끗하게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라. 너의 헛된 모든 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네가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새번역)

3.자기 본분에 충실하라(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3, 개역한글)

자기 받아들임의 상태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1)현재 자신의 삶의 상황을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2)비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3)입만 열면 세상의 허무함과 부조리함을 한탄하고 불평하면서 정작 자신의 부조리함과 불합리한것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까?
4)일상적인 작은 즐거움을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까?
5)하나님을 매 순간 기억하고 경외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것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냉소에 지지말고 극복하고 이기시는 하나님 백성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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