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보복, 복수, 화풀이(삼하3:27~39)

20160718

2016년 7월 18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30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삼하3:27~30) 

[단락구분]
27절-30절: 요압이 아브넬을 죽임
31절-34절: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함
35절-39절: 백성들이 다윗의 결백을 믿게 됨.

[말씀]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주님의 힘과 위로하심과 도우심으로 전진하는 한 주간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사울왕이 죽은 후 다윗이 왕권을 세우는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역사서는 정치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는 권력 싸움이라 진흙탕의 개싸움 처럼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안 일어 날 수 없기 때문에 3장까지의 전개과정에서 보듯이 죽임과 배반이 난무하는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여러 사람 이름이 나오고 있지만 要旨는 사울 왕 쪽 사람들하고, 다윗 왕 쪽 사람들이 권력 싸움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임을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인간 왕 고집하다가 일어난 일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게 되면 세상에서 이전투구하다가 하나님의 사람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죽는 사람이 나옵니다. 사울 왕 계열의 권력자 아브넬이 다윗 왕 계열의 권력자인 요압에게 살해 당합니다. 죽이면 안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람인데 죽입니다. ‘지는 권력’인 자신의 왕 이스보셋을 배신하고, ‘뜨는 권력’인 다윗 왕에게 정권에 대한 밀약을 위해 헤브론으로 왔다가 요압에 의해 살해 당한 것입니다.  요압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한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대단히 큰 일이 벌어 진 것입니다. 마치 북한의 실질적인 막후의 권력자가 정권 이양을 위한 밀약을 위해 남한에 왔다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중앙정보부장한테 살해 당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든 불똥은 대통령한테 튈 수 밖에 없겠지요.

아브넬이 자신의 안방에서 암살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 보십시오. 전쟁이 일어 날 수도 있고, 다윗은 뒤에서 사람을 죽이는 파렴치한이 되 버리는 것입니다. 사울의 죽음 이후 승승장구하던 다윗에게 위급한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다윗도 대단히 기민하게 사태를 수습합니다. 자신이 이 죽음과 아무 상관없다. 요압이 죽인 것이고, 요압이 했다는 증표로 요압을 향한 무서운 저주를 내립니다. 그리고 아브넬의 장례를 손수 주관하면서 금식과 애통으로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꼭 생각해 봐야 할 사람은 요압입니다. 요압도 나라를 맡은 사람으로 앞뒤를 재보면 자신이 아브넬을 죽이면 어떤일이 벌어질지를 모르지 않았을텐데도 복수가 뭔지 참지 못하고 아브넬을 죽이게 됩니다.

‘보복은 꿀보다 달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만큼 복수의 유혹이 달콤하다는 거겠지요. 하지만 보복은 꿀처럼 달지 않고, 씀바귀처럼 씁니다. 우리는 크든 작든 당한게 있으면 속상해서 잊지 못하고 마음의 짐으로 남겨 두는데 좋을게 하나도 없습니다. 때로 정당한 보복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정당한 보복도 내가 하면 안되고, 법에 의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져야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이 끊어질 수 있는 겁니다.

내가 보복하려고 하면 작은 화가 더 큰 화를 부르게 되고 복수는 무한 반복, 무한 확장될 수 밖에 없습시다. 보복운전 보십시오. 한 사람만 꾹 참으면 넘어갈 일을 서로 보복하려고 하다 불행한 일을 만들게 되는 겁니다. 요압되는 겁니다.

보복, 복수, 화풀이 다 신중해야 되고 안해야 됩니다. 보복은 당장에 되갚아 주는 거고, 복수는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나중에 하는 겁니다. 화풀이는 엉뚱한 사람한테 분풀이하는 겁니다.

살다보면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그래도 어떤 보복, 복수, 화풀이도 하지 않아야 됩니다. 바보같이 보이지만 이게 정답입니다. 보복이 없는 삶은 그리스도인됨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인입니다. 마음의 간음이 간음인 것 처럼, 마음의 살인, 마음의 복수도 살인이며 복수입니다. 마음의 독소를 빼야 합니다.

복수하고 싶은 사람 있으신가요? 참 속상하지요. 그래도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이 회개할 사람은 회개시키실 것이고, 심판 할 사람은 심판하실 것입니다. 화풀이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정리: 김화영)

[매일성경 한 구절]
요압이 저지른 참극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요압 자신입니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상실감과 분노에 휩싸여 복수의 칼을 갈고, 복수 이후로는 죄인으로 낙인 찍혀 저주받는 인생을 자처하고 맙니다. 누구든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자기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이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는 그릇이 되지 않도록 어서 마음의 독소를 제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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