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애도(哀悼)의 마음(삼하1:17~27)

20160713a

2016년 7월 13일
새벽을 깨우는 말씀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삼하1:17-27)

[단락구분]
17~18절: 다윗의 애가에 대한 도입
19~27절: 다윗의 애가
A. 애가의 시작(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19절)
B. 죽음에 대한 애통(20~21절)
B’ 사울과 요나단의 업적 기념(22~24절)
A’ 후렴(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25a절)
B” 요나단 기념(25b~26절)
A” 결어(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27절)

[말씀] 

이 다윗의 애가를 보면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통해합니다. 살아 생전 사울이 그토록 끈질기게 다윗을 죽이려한 것을 알기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쇼로 오해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조차 내 편, 네 편 하면서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만날 수도, 싸울 수도 없습니다. 함께 했던 기억만 남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들과의 수 많은 기억 중에서 아름다운 순간만을 회상해 냅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삼하1:23). 의견이 다름에도 끝까지 함께했던 사울과 요나단 부자의 사랑과 용맹함을 칭송하며 그들의 죽음이 적들에게 조롱받지 않도록 알리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을 다한 애도입니다.

다윗의 진심을 다한 애도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 게 됩니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감 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죽음을 모른 척하고, 빨리 잊고 싶어 합니다. 장례식에 참석해도 애뜻한 애도의 마음을 상실한채 죽음을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 역시 부활과 천국을 말하기만 했지,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죽음의 슬픔과 아픔과 안타까움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듯 합니다. 죽는 순간 모든 게 ‘끝’이 아닌데 말이지요. 모든 죽음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 전부, 희노애락의 기억과 삶이 있는 데, 순식간에 사라진다면 참 허무하고, 쓸쓸할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팔복’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것이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8번 반복합니다. 슬픔에 공감하는 절절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 애도하는 슬픔의 공감을 가지고 영원히 슬퍼할 것이라고 합니다. 함께 애도하고, 슬퍼 할 때 거기서 복된 삶과 위로와 평화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기쁨의 자리에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슬픔의 자리, 애도의 자리에서 함께 슬퍼하며 위로할 때 더 보람될 것입니다. 애도의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 평화, 위로가 있습니다.

죽음을 애도할 줄 모르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죽음을 애도하지 못할 때 자신의 이익과 감정과 사상을 위해 사람은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 버리는 ‘짐승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진심어린 애도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애도, 우리의 애도를 되짚어 보면 좋겠습니다.죽음에 대한 애도를 잃어버린 이 땅과 우리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다윗이 요나단과 사울의 죽음에, 그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며 애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죽음 앞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죽음 조차도 하찮게 여기는 이 세대를 용서해 주시고, 저희가 다윗이 오늘 보여준 진정한 애도의 모습을 배우고 회복할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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