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18: 하나님의 있음과 없음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마7:6)
하나님의 있음과 없음은 신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한 눈에 쉽게 들어오는 말씀은 아닙니다. 7장 5절까지는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7절부터는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6절은 그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 두 단락의 말씀 사이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문헌적인 연구들에 의해 6절의 말씀은 독립적인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현재의 위치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뜻이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석도 분분합니다. 거룩하고 값비싼 진주는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에 관한 모든 거룩한 말씀, 복음을 의미 합니다. 그 복음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지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줘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값어치를 모르니까 돼지처럼 밟아버리고 개(야생견)처럼 사납게 돌아와 찢어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와 돼지는 유대인들이 그 당시 제일 싫어하고 멸시하던 동물입니다. 개, 돼지는 이방인 일 수도 있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납게 공격만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일 수 있습니다. 설교 때 격한 단어를 쓰는 경우는 큰 저항에 부딪쳐서 위기감을 느낄 때 입니다. 주님은 큰 저항을 느끼셨기 때문에 개 돼지라는 격한 단어를 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선포되고 있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섣불리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공격당해 다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구절이 또 나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10:14) 전도하러 갔는데 환영하지 않으면 더 이상 연연해하지 말고 발의 먼지조차 다 털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지 않았으면 너희가 강요해도 소용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먼지조차 털어버리고 철수하는 게 현명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아무리 열심히해도 제자들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음을 가리켜 주시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우리가 계속 강요하면 우리의 힘만 빠지고 그 이상은 우리의 영역이 아님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받아들일만한 사람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주님은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만약 교회 목사가 이런 설교를 하면 성도들은 목사님의 신앙심에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가치를 모르는데 강제로 주면 오히려 화가 나서 밟아 버리고 와서 찢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요하다 오히려 전도가 막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산상 설교는 주님 공생애 초기에 주신 말씀들 이었습니다. 이방인 선교는 사도행전에서 이루어 집니다. 오기로 강요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면 오히려 전도가 막힙니다. 전도는 오기로 하는 싸움이 아니고 고도의 지혜를 갖고 하는 설득과정입니다. 주님의 이 가르침에서 현 한국 사회의 전도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에게 주는 진주(믿음, 구원,십자가)가 거부 당할 때 어떻게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럴 때 오늘 주신 주님 말씀은 우리 자신 속에 생긴 오기같은 마음을 겸손히 내려놓고 현재의 내모습, 현재의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 겸손히 나아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내 신앙에 대한 돌봄의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메세지 성경으로 보면 복음을 거부하는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알게 됩니다. “거룩한 것으로 장난치지 마라 농담과 바보짓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 거룩한 신비를 한갓 슬로건으로 격하시키지 마라 시대를 따라 가려다가 너희는 오히려 약아져서 불경스러운 사태를 부를 뿐이다”
나의 신앙을 더 신중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나의 신앙에 장난(심심풀이, 큰 뜻없이)같은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우리의 삶의 모습이 진실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보고 우리의 신앙을 같이 배우고 따르고자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을 내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이 처한 진짜 문제는 욕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여 줄 게 없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받아 들이지 않는 그들에게 오기 부리지 말고 내 안에 거룩함이 진짜 있는지? 내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지 진중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심”과 “있음”이 내 안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있음”의 신앙이 있어야 그들에게 보여줄 게 생깁니다.
내 삶의 한순간 한순간 하나님 “없음”의 시간이 더 많지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불안에는 욥처럼 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음도 있지만 진짜로 두렵고 불안한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없음”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가장 큰 불행이자 아픔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 없음의 시간이 많을수록 나는 서서히 부패하여 죽어가는 것입니다.
신자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없음의 죄입니다. 다른 죄들은 하나님 없음으로 파생된 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있음이 나의 신앙생활을 완전히 지배해야 나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것입니다. 참은 있으면 있는 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거짓은 있는데도 없는것으로 사는 것입니다. 좋음은 있을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나쁨은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하는게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있음에 동의하는 사람들 입니다. 있음에 동의하고 없음으로 사는것은 거짓이고 나쁨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정의는 단순합니다. 있는 하나님이 진짜 있음이 좋은 신앙입니다. 계신 하나님을 진짜 있음으로 믿고 의지하고 기뻐하는 신앙이 좋은 신앙이고 참된 신앙입니다. 하나님 있음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없음의 삶을 살고 내 멋대로 판단하고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기도 생활도 없이 사는 것은 거짓 신앙입니다. 좋은 신앙은 있는 하나님의 있음을 믿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입니다. 있음의 신앙이 안되고 없음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슬로건”(말뿐인)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을 따르려는 끈질긴 우직함은 다 포기하고 사는겁니다. 세상과 하나님 중 유리한 쪽을 택하며 “약아빠짐”(메세지성경)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을 갖고 모순 속에 살면 죄가 잉태되며 우리의 힘은 다 빠집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있으면 있는 것으로 사십시오. 그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계십니다. 이것을 믿고 있음의 신앙으로 살 때 참된 신자됨이 이루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너희에게 이루어짐”이 없다고 공격합니다. 하나님 있음을 없음으로 사는 장난스러운 슬로건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계십니다. 하나님의 있음을 늘 있음으로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내십시오. 하나님의 있음이 있음이 될때 “함”과 ”됨”이 이루어집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나오는 말입니다. “나투라 나투란스(Natura naturans), 나투라 나투라타(Natura naturata)“. “나투라 나투란스”는 무언가 할 때 너무 신나고 재밌고 즐거워서 자연스럽게 저절로 하게 되는 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투라 나투란타”는 그런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는 어떤 일이 정말 신나고 저절로 되어지면 엄청난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인의 삶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나투라 나투란스, 나투라 나투라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경험(성령)은 강제성이 없습니다. 신이 나서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설교 준비를 힘들어하며 겨우 겨우 하면 하나님 없음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회 출석을 의무감으로 하면 하나님 없음입니다. 행복한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기쁨으로 되면 이 진주를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는 게 아니고 되어져야 합니다. 성경도 읽는 게 아니고 읽혀져야 합니다. 사랑도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저절로 되어져야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저절로 되는 신앙의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저절로 되는 신앙의 본질적인 삶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있음의 신앙은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살립니다. 있는 하나님을 없게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있음의 신앙으로 승리하는 하나님 백성 되시기 바랍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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