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새벽을 깨우는 목사님 말씀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한 주간을 시작하는 첫 아침입니다. 우리의 평화와 나음을 위해 십자가 고통을 참으신 주님의 무한한 사랑의 힘으로 넘어지지 말고, 보호받고, 일어서는 감사의 한 주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7절에는 4가지 사랑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게 한다는 것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사랑의 위대함과 쉽지 않음이 배여 있습니다. 잘못 보게 되면 바울이 과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은 시기와 자랑과 교만과 무례함을 반대하고, 거부한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7절에 오게 되면 사랑은 그런 모든 것 조차도 하나님의 의와 뜻 안에서 하나님의 관용으로 이 모든 것들 조차도 참고, 믿고, 희망하고, 견뎌낼 수 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시기하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무례히 행하고 성내고 악한 자들이라도 참고, 믿고,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말이지요.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되면 사랑은 무서운 겁니다.
바울이 7절에서 첫번째로 들고 있는 사랑의 모습은 모든 것을 참는 사랑입니다. 4절에서도 오래 참는 사랑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참는 것을 잘하지 못해서 반복했을까요? 4절에서는 오래 참고, 7절에서는 모든 것을 참고. 종합하면 참을려면 한 두번 하다 끝내지 말고, 누구에게는 다 참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상상이 잘 안갑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필요한 사랑이고, 해야만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 할 때 참는다(Stego)는 말은 덮어주고, 지켜준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사랑은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게 사랑입니다. 살다가 실수해서 잘못하고 부족한 모습볼 때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타인의 죄를 즐겨하고 퍼뜨리고 비난하고 욕설하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런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것에 편승하지 않고 덮어주고, 보호해 주고, 지켜주어 최소한의 상처만 받고 일어설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품어주지 않으면 계속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잠10:12에 말씀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사랑은 잘못한 것에 대해서 꾸짖고, 경고하고, 고쳐주지만 허물과 실패를 폭로하고, 떠벌리는 대신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주님의 모습 다시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느니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질고를 지고, 찔리시고, 상하시고, 고난당하신 겁니다.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더 깊어져야 하고, 더 철이나야 하는지요? 주님의 오래 참으시고, 모든 것을 참으시는 사랑에 다시한번 기대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주님을 모른다고 배신한 후 주님이 덮어주신 그 사랑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뜨겁게 고백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하나님, 이 귀한 사랑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쳐 덮어주고 참아내며 한 사람의 인생을 살려내는 그 사랑 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크신 은혜로 다가오셔서 저희가 그 크신 사랑 배우고 해낼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십시오.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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