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14:기도하라2(마6:9~13). 양은익 목사. 2016.4.24.

 

2016년 4월24일 주일예배
산상설교14: 기도하라2(마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9-13)

지난 주부터 산상 설교 중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살피고 있습니다. 과시하는 기도를 주의 주시며 위선과 관계된 문제를 주의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과시하는 기도를 피하려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중언부언 의미없는 장황한 기도를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모범 기도입니다. 우리는 배워야 하고 배워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이 길지 않아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주기도문은 간단 명료합니다. 기도는 신앙의 중요한 행위이며 모습이자 신앙생활의 호흡입니다. 즉 생명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 기도가 있고 없고는 완전 차이가 납니다. 기도는 신비와 같습니다. 기도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하는 내내 하나님은 다가오셔서 응답하시고 만나주시고 인도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을 살리는 생명의 수단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과 역사와 치유는 기도하는 자만이 누리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하면 손해입니다. 굉장한 것을 잃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유익이며 기쁨이며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으로 기도할 때 영으로 다가 오셔서 만나주십니다. 진실한 신앙 생활은 기도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체험이 기도함으로 기도 안에서 일어나므로 기도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지 안하는지는 본인만 압니다. 기도하면 많이 달라집니다.

다음은 칼빈의 말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게 된다. 그냥 놔두면 기도 생활은 없어질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기다려서 기도하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의지를 갖고 내가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생각만으로 안됩니다. 교회에 기도회가 있는 이유도 같습니다. 웬만큼 기도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홀로 기도를 열심히 간절히 끊임없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주일 내내 간절한 기도 생활없이 주일을 맞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데서나 할수 있는것이 기도이고 아무데서나 할수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신앙 생활의 생명이므로 기도의 자리로 반드시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이 배워주신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사실 기도는 원하는 기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터무니없는 기도,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기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들으시는 하나님이 걸러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져야 합니다. 성숙한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의 내용이 성숙해져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하는데 머물면 안됩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내 욕망을 채워 달라는 간구의 기도로 일관하면 내 신앙은 나의 희생 헌신없이 나만 아는 무당 종교로 타락합니다. 기도가 성숙하여 주님 뜻을 물으면서 하는 기도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기도만 하기 때문에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하는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보면 우리의 삶의 방향이 확실히 보입니다. 이 기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주님의 마음이 드러나 있고, 사명이 드러나 있고, 주님의 삶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기도를 배워 그대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을 부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름으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고백할 수 없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할 수 있어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에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으니 나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대리자의 지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기에 처음 나옵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4:22-23) 모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 해방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 하신 그 구원과 해방의 큰 역사를 지금 이 시대, 저희에게 하라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그 큰 구원과 해방사역을 한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자리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이 일을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 일을 하겠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구원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겠습니다.”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 책임있는 자리로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이것 저것 떼써서 얻어내는 수준의 기도에서 성장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책임있는 자리로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2.3개의 당신 청원
1)(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2)(당신의)나라가 임하시며 3)(당신의)뜻이 하늘에서 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내가 하는 행동, 말, 나의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 먹으면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통치가 죽지않고 개개인의 삶에 살아있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진수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내 삶과 교회 안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내 마음대로 살게하지 마시고 하나님뜻에 맞게 살게 해주십시요.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런 하나님 뜻에 맞는 생활 못했음에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현재의 우리의 신앙 수준을 넘어서라고 꾸준히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개인 축복만을 바라는 현세태에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 안에 이루어지기를 계속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과제는(삶의 목표) 3개 입니다.

3.3개의 우리의 청원
1)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우리의 과제
1.생존의 완성: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요.
생존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잘나가고 있다고 자만하면 안됩니다. 매일 겸손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함께 먹을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난민들 전쟁중인 난민들 천재지변에 놓인 지구촌 식구들의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놓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2.관계의 완성: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관계의 완성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관계는 회복됩니다. 괸계가 틀어지면 상처가 생기고 지옥같은 삶이 됩니다. 용서가 일어나야 관계가 회복됩니다. 용서는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하나님과 진정으로 관계 회복이 일어날때 나의 모습, 초라한 내 모습이 보이고 나를 구원하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며, 나는 너그러워지고, 주위 사람들을 용서하고 나를 낮추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영적인 깨우침이 일어나야 사람과의 관계의 회복 과 복원이 일어납니다. 이 관계 회복은 인생이 걸린 문제이므로 반드시 전력하시기 바랍니다. 출발은 기도입니다.

“관계가 막히면 넓은 침대도 좁고 관계가 회복되면 칼날도 넓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막힌 관계를 뚫는 것은 “용서”와 ”성찰되어진 사랑” 입니다. 주님은 탕자 비유를 드셔서 설명하십니다. 가해자는 아들이고 피해자는 아버지인데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피해자인 아버지가 먼저 달려나와 용서합니다. 그렇게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시키고 완성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중에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면 내 영혼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 하나님께 그 나쁜 기억과 상처를 깡그리 다 망각시켜 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십시요. 상처를 극복하려면 그것을 넘어서는 기쁨을 가져야합니다. 나쁜 기억은 다 망각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3.존재(인격)의 완성: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과 시련, 유혹은 항상 있습니다. 이들은 삶의 동반자입니다. 이것에 지면 내 인격과 삶이 망가집니다. 지면 안됩니다. 시험이 올 때마다 지면 속수무책의 삶이 됩니다. 이 시험과 시련을 이기고 넘어설 때 우리는 단련되어 신앙의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갑니다.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이 주기도문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 신앙의 돌파구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교회 다니는것만으론 안되겠구나 하는 뼈져린 의식이 있어야겠습니다. 신앙의 돌파구가 있어야 합니다. 성품도 최악이고 삶도 신자답지 않은데 믿는 내용만 좋으면 좋은곳 간다는 신앙은 안됩니다. 내 삶의 근원, 행동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통치가 지금도 살아있음을 보여 주시길 원하십니다. 내 성품의 완성을 원하십니다. 기도생활이 더 깊어지시길 축원 드립니다.!

4.송영: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아멘)(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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