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성 피부병(나병)에 대한 얘기다. 여기서 말하는 나병이 지금의 한센병과 같지는 않더라도 그 당시는 치명적인 병 아니겠는가? 더구나 전염병이니 부정하다 선언하고 격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별거 아닌 줄 알고 진단받았던 피부 부스럼이 죽을 수도 있는 나병(악성 피부병)이라면… 靑天霹靂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에 오진이면 어떻게 하는가? 지금도 오진이 있는데 오로지 눈으로만 판단해야 하는 그 당시는 이게 보통 일 아니었을 거다. 오진을 막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잘못 선고하면 큰일 나는 일이니 시간 걸리더라도 신중 또 신중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보시면 알겠지만, 제사장은 치료 빼고, 그 당시 공동생활에 치명적인 피부병의 모든 것 – 진단, 선고, 격리, 완치 판결, 치료 후 정결 의식, 복귀 등(레 13. 14장)-을 담당하고 있다. 책임이 막중하다. 피부병을 놓치면 전염되는 일이 일어날 거고, 오진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거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보지 않았는가? 순간이다. 방법은 시간 걸리더라도 조급하지 않게 자세히 보며 분별하고 판단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제사장,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근데 우리는 모두 제사장 아닌가? 우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피부병 판단은 안 하지만 영혼을 보살피는 일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사명이지 않은가! 영혼을 돌볼 때 정말 잘 돌봐야 한다. 무엇인가 판단하고 평가할 때 신중하게 분별력 있게 겸손히 해야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는다. 성급한 판단과 평가는 금물이다. 잘 모르면 기다리는 편이 낫다. 남 판단 하기 전에 깊은 강처럼 진중하게 내 영혼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분별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 신중한 처신으로 치유 받는 타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2. 레위기 15장은 19 禁이다. 거룩한 성경에 별게 다 나온다. 읽기도 민망한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 아닌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적나라하게 ‘性’ 문제를 들고나오신다. 왜 그러신 것 같은가? 남이 볼 수 없는 것, 남이 모르는 은밀한 개인의 삶에서도 거룩하라는 거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性과 거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던가. 타락한 성으로는 성결을 이룰 수 없다.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이 부분은 성을 왜곡하는 것도 아니고, 성을 금기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다. 성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사정과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이유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생명이 우리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남자 화장실에 있는 名言이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레위기 15장 얘기하는 거다. 명심하시라. 이거 잘해야 거룩해진다. 성 문제에 부끄럼 많은 현대 교회는 정말 잘 봐야 한다. 이부자리는 생명이 탄생하는 거룩한 곳이다. 부정하면 안 된다. 이부자리의 거룩이 지켜질 때 가정과 공동체가 평안해질 수 있다. 지금도 변한 거 없다.
아마도 이 性的 규례로 -18장에 또 나온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만연할 수도 있었을 불법적인 성관계와 잘못된 성적인 욕망이 많이 억제됐을 것이다. 더 상세히 나가면 서로 민망하니 그만하겠다. 하나님 주신 ‘내 사람이 최고다’ 하는 마음으로 살면 정말 그게 최고다. 2월 첫날인데 주 안에서 행복한 시간 많이 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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