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31. 레위기 11장~13장(성경일독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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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상가상. 점입가경이다. 읽을 수는 있으나 무슨 말인지는 ‘애매한’, 비밀 지령 같은 지시들만 난무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 그때를 살아 보지 않았는데 어찌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겠는가? 說往說來만 있을 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거다’하는 딱 부러지는 결정타가 없다는 거다. 정말 이현령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假說만 넘쳐난다.

열심히 읽어 보시라. 양과 메뚜기는 먹어도 되고, 돼지와 쥐는 안 된다는데 그 이유가 뭔가? 지금은 아무나 못 먹는 일급 요리, 낙타를 그때는 왜 먹지 못하게 한 건가? 설명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만 알고 계시다는 반박할 수 없는 순진하고, 믿음 좋은 해석에서부터, 부정한 것들은 옆 동네 종교에서 제물로 쓰던 것들이고, 그들의 위생과 건강을 지켜 주기 위해 부정과 거룩을 구별했다는 說까지 다양하다.

2. 요점은 그거다. 부정한 것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 세세한 하나님의 뜻은 지금으로써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규정과 절차는 그들을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만은 인정하자는 거다. 생각해 보시라. 사막 한복판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함께’ 할 때 이런 법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들은 이제 막 노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셔야 했고,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셔야 했다. 이게 세세한 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세세한 규정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던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음만 제대로 보면 된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 한번 보시라. 먹거리(11장), 출산(12장), 피부병(13장) 같은 세세한 일상의 삶에 하나님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이방인들과 다른 명백하고 절대적인 기준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거다. 부정한 것을 피하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고, 부정한 곳에는 가지 말라는거다.

남들과 똑같으면 어떻게 하나님 백성인가? 하나님 백성다워야 하나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하나님은 내 일상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거, 잊지 않기 바란다.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거룩하기 위해’ 정말 애써야 한다.

3. 음식 법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백성의 ‘밥상머리 교육’이다. 먹을때 조차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시라. 세세한 간섭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거다. 산모에 대한 부정 선언도 한번 보시라. 피가 생명이므로 출산 시 흘리는 피가 생명의 유출이므로 ‘부정’하다는 신학적인 선언을 하시지만, 사실은 그 부정의 선언으로 산모는 ‘산후조리 요양원’에 가서 쉬다 오는 거다. 그 시대에 이런 호사가 어디 있는가? 큰 은혜고 보호 아닌가? 이런 배려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거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자들을 격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악성 피부병을 돕는 제사장들의 애씀을 보면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오늘도 언제나 어디서나 관심 두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힘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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