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성서학당:모세오경 35번째(창세기 22장). 201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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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12월9일 들풀성서학당:모세오경35
창세기22장 요약

기독교인에게는 곤혹스럽고 비기독교인에게는가장 논쟁하기 좋은 사건(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게하는 사건)이 22장 사건입니다.그 당시 이방 종교에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하는 종교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룬 철학자가 키에르케고르입니다. 그는 이삭 번제사건을 다루는 책(공포와전율)을 두꺼운 책 한 권으로 다룰 정도로 이 사건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건입니다.

이스마엘이 쫓겨나고 아들 하나 바라보고 브엘세바에서 10여 년간 비교적 평안한 삶을 살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는 크나큰 시험이 닥쳐옵니다. 하란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신사건(창12:1)과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 사건(창22:1~2) 모두 아브라함에게 첫 번째와 마지막 시험으로 모두 큰 믿음을 요구한 중대한 사건들입니다.

이 두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너무도 어렵고 점점 수준이 높은 것을 요구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신앙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22장의 구조…Here I am]
창세기 22장의 구조를 보면 누군가 아브라함을 부르면 아브라함이 대답하고 대답하면 부른 주체가 요구하거나 묻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1절은 하나님이 부르시고/아브라함이 대답하고/하나님이 명령하심)(7절은 이삭이 아버지를 부르고/아브라함이 대답하고/이삭이 질문하고)(11절은 여호와의 사자가 부르고/아브라함이 대답하고/여호와의 사자가 아들 죽이려는 것을 멈추라고 명령하고)

22장에서 보여주는 이 패턴(부르시고-대답하고-명령하고-따르고)이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구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성요소 중 1개만 빠져도 신앙생활은 어렵게 됩니다. 하나님이 매일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못 들은 척 대답 안 해도 신앙생활은 중단되고, 대답은 했는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거부하고 순종 안 해도 신앙생활은 중단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대답하고 하나님이 내 대답에 요청과 명령을 하실 때 “내가 해보겠읍니다!!” 응답하고 순종해야 신앙생활이 살아 움직여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매일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정신 차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1~2절) 이삭이 태어나고 젖을 떼고(3~4세경으로 추정)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쟁 후 화해한 후 약 10년의 기간 아브라함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큰 시험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시면서 늘 힘주시고 동행하시며 축복을 주시고자 하셨던 하나님과 너무 다른 모습으로, 너무 충격적인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의 요구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삭의 희생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 像은 무조건 우리 편 되어주시고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런 낙관적인 신앙만을 갖게 되면 안 좋은 일 생기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다음으로 발전된 하나님 像은 권선징악의 하나님입니다. 악한자를 벌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도 죄를 지으면 벌 받을 수 있음을 깨닫는 신앙단계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부족합니다.하나님의 인도 하심은 신비하며 우리의 생각보다 깊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헤아려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전3:11,욥42: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보고 판단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전3:11…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욥42:3…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잘되고 기쁠 때도 겸손해야 하고 힘들 때도 이겨내는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 계십니다. 하나님의 요청에 아브라함은 어떠한 항변도 이의제기도 안합니다.브엘세바에서 모리아까지 70~80km되는 길을 묵묵히 사흘에 걸쳐 떠납니다.아들에게는 번제에 쓸 장작을 지게하고 본인은 아들을 죽여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 불(부싯돌)과 칼을 들고서 말이지요.(3~6절)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의 요구에 거절이나 항변이나 타협이나 때 씀 없이 그대로 순종했을까요? 우리의 상상과는 다른 성경의 답은 히브리서11:17~19절에 있습니다. 히11:17~19…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하여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함으로 이삭을 하나님이 죽이시면 다시 살리실 줄을 믿은 것입니다. 이는 신약의 부활 사상으로 연결됩니다.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번제드릴 양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셨다고 믿는 큰 믿음, 하나님이기에 온전히 믿는 믿음. 이것이 아브람이 하나님 시험을 통과하며 보여줬던 믿음의 진수입니다.

하나님은 왜 10여 년간 평안히 살던 아브라함에게 큰 시험을 하고자 하셨을까요? 아마 아브라함에게 확인하고자 하셨던게(Test)있으셨던 거 같습니다.아브라함에게 미심쩍었던 면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이 시험의 수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시험의 성격은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것을 회수해가도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좋은걸 주시는 하나님을 잘 믿는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걸 다시 가져가시는 하나님도 나는 믿을수 있는가? 이 시험은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시험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하나님을 믿고 따를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내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 살펴보기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시험이 있어야 실력이 늘어납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사탄의 시험입니다. 이 두 시험 중 하나님의 시험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내가 떠나야 하고 순종해야 하고 버려야합니다. 사탄의 시험은 우리를 꾐에 빠뜨려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달콤해서 유혹에 가깝습니다. 내가 유혹을 덥석 무는 순간 사탄에게 굴복하게 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 사탄의 시험에도 지지 말고, 하나님의 시험도 잘 치러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했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하나님은 이미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납시다. 하루하루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37:1~7…악한 자들이 잘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말라.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러지고 만다. 주님만 의지하고 착한 일을 하여라. 그분의 미쁘심을 간직하고 이 땅에서 살아라.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께서 몸소 도와주실 것이다. 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수 있다는 자들 때문에 안달하지 말아라.(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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