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9. 주일설교: 신자의 삶의 자세3:겸손(베드로전서5:5b~6). 양은익 목사

20151129

*죄송합니다: 금주 설교 영상은 음성녹음이 되지 않은 관계로 올리지 못합니다. 

시편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우리맘의 중앙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못하면 우리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소홀히 하지않고 하나님을 대접해 드려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때 하나님을 느낄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삶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추구하여 늘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아내야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때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늘 우리 속에 모시기 위해 극진히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2주간 살펴봤읍니다.

오늘은 겸손에 대해 살펴보겠읍니다.신자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겸손은 성품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겸손은 삶의 자세의 문제입니다.겸손하기 위해서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교만은 자기높임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대항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단테의 신곡3편중’연옥’편에 무거운 돌을 등에지고 허리를 펴지 못한채 아래만 보고 사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사람은 이땅에 살때 교만하게 살아 형벌로 아래만 보고 등에 돌을지고 살게 되었읍니다.교만을 무겁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신감에서 나오게 되는 마음의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교만을 나쁘게 보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영웅시하는 정도가 됐습니다. 신앙인들 마저도 자신감에 과도한 나머지 영적교만에 빠져서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생활에 큰 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화목을 깨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서고자하는 영적교만에 빠질때 내가 하나님처럼 판단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같은 영적교만은 불화살 같아서 상대방에 심각한 피흘림을 주게 됩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이런 모습이 없기 위해서라도 신앙인의 삶에는 순수함이 사라져서는 안됩니다.

CS Lewis는 ‘교만한 사람은 항상 내려다보는 사람을 말하는데 내려다보는자가 어떻게 위의 것을 볼수 있겠는가’말합니다.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속의 욥의 친구들처럼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욥을 정죄하는 모습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고난중에 있는 형제에게 ‘죄의 문제’를 들먹거리며 불화살을 쏘면 안됩니다.우리가 할 일은 옆에서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주는 것으로 족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신앙인과, 겸손한 공동체를 기뻐하십니다.하나님은 정말 교만을 싫어하십니다.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물리치시고 대적하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신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교만하면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능력과 내실력으로 산다는 착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외에는 자랑할것도 내세울것도 없읍니다.T. Aquinas:교만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와 가장 늦게 떠나는 끈질긴 죄라고 했습니다. C.S Lewis 교만은 모든 악의 뿌리. T. Aquinas: 교만은 모든 죄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교만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만하면 불신자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교만하면 신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못누립니다. 우리는 겸손과 겸비함으로 말씀보고 기도하며 예수님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야합니다. 불교에서도 겸손을 下心이라 합니다. 下心을 갖기위해 108배 3000배를 할 정도로 높아진마음을 굴복시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봐야 합니다.

교만의 심성을 가진 우리가 과연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겸손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옳다고 하는 자기 중심적인 본성이 내안에 있기 때문입니다.뿌리 깊은 죄의 본성입니다. 이같은 본성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만나 그 분의 거룩과 지혜와 능력 앞에서 깨어져야 겸손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면 할때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얼마나 얕고, 작은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입니다.겸손은 하나님을 참되게 대면하면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겸손(Humility)의 어원은 흙(Humus)입니다.자신이 흙으로 빚어진 존재며,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섣불리 자랑하지 않고, 과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칼빈은 이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를 자기부인이라는 말로 정리합니다. 자기부인이 시작될 때 겸손이 시작되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죄된 자신을 포기하고, 거듭난 참된 자신을 찾을 때 하나님이 내 삶의 자리에 깊게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시면서도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한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힘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겸손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겸손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자세입니다. 겸손 할때 하나님이 삶의 자리에 임재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잠16:18)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잠18:12)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없어도 된다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은 성도들에게 불행한 성품입니다. 교만이라는 삶의 자세에 끝까지 저항하시고, 겸손으로 살아가는 삶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겸손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시간 하나님을 대면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갈 때 나타나는 결과물입니다. 매일 조금씩 쌓아가야 합니다. 교만보다는 때가 되면 높이시는 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서 겸손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소설가 최인호 선생을 암 투병 기간 중에 극진히 보살펴 주었던 함명춘 시인이 최근에낸 시집에서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사랑과 믿음보다 죽는게 더 어렵다고 합니다. 몸의 죽음도 어렵지만, 자신을 낮추고 부인하는 자기죽음은 얼마나 더 어려운 것입니까? 겸손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은 그래서 더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의 길입니다. 귀한 겸손으로 하나님과 함께, 주의 사람들과 함께 평화와 사랑으로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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