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삶을 소망하며

2015060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랴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왕하5:9~12)

나아만은
‘내 생각’대로 해주지 않는 
엘리사가 미덥지 않았겠지요. 
결국 화만 잔뜩 내고 
치료를 거부하고 떠나 버립니다. 

나아만의 이런 모습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진심과 진실과 사랑마저도 
거부하고 마는 두텁지 못한 삶이 
아쉽지만,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괴테가 에커만과 나눈 대화에서 한 말입니다. 
쇠망과 파멸의 상태에 있는 모든 시대는 주관적이다. 반면에 모든 발전하는 시대는 객관적인 경향을 지닌다. 우리의 오늘날은 후퇴하는 시대인데 왜냐하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주관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기분, 생각, 의견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태도인데
괴테는 그런 의식이 만연한 시대와 사회는
쇠퇴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염려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정서와 태도가 
자폐적일 정도로 자신 안에 갇혀있는 
주관적인 시대로 점점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그렇고,
일상의 삶이 그렇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요. 

이유야 저마다 있겠지만
제 생각과 태도와 의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끈질김이
나도 너도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습니다. 

위험하고,
불행하고,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합니다. 

메르스보다 더 강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데도 치료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요? 
죄 가득한 세상 나라는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고쳐나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같을 수 없는 생각이지만
생각과 생각이 합쳐 조화를 이루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내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안 된다고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서로가 달라도 
신뢰하고 화합하는 두터운 삶의 모습
여전히 희망해 봅니다. 

*두텁다: 신의,믿음,관계,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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