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렘 29:11-14)
1. 첫 번째, 평안입니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지금, 코로나 사태로 재앙이 떨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라더라도,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듯이, 그 옛날 이스라엘도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다윗이라는 유명한 왕, 다윗에 이어서 솔로몬, 그리고 로호보암 왕으로 왕족이 이어집니다. 나라가 르호보암 왕 때,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예루살렘 중심으로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은 엉망이었어요. 막 왕조가 막 바뀝니다. 쿠데타가 자꾸 일어나고, 그러다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고대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 당합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남 왕국 유다는 한 136년을 더 버티었습니다. 그 사이에 주변의 왕조가 이제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바빌론에 주전 586년에 멸망 당합니다. 그리고 역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갑니다. 성경에서, 바로 그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데, 그들이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참으시고, 또 참으시다가 북 왕국(북 이스라엘)이 더 험했기 때문에 먼저 망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 백성들을 채찍질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 차리라고 제발. 너희들 나라가 이렇게 하면 망한다고, 아모스 선지자, 호세아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면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이들은 정신 차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계를 받아도, 계속해서 똑같은 죄들을 반복해서 지었습니다.
이 당시 그러한 시대에 나타난 분이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본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날마다 자기 민족 자기 나라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나라를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를 좀 지켜주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그 말씀은 정말 희한한 메시지입니다. “예레미야! 그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하라.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라! 그리고 이 편지를 읽게 하라! 이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해라. 평안을 유지하게 해라. 소망을 갖게 해라!” “너희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이방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여라. 그리고 너희들끼리 결혼을 시키고, 자녀들을 계속 낳아라! 그리고 농사를 열심히 짓고, 집을 짓고 살아라.”
그런데 이때 또 다른 많은 가짜 선지자들이 여기서 저기서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저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내게 임했는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하게 해서, 우리 민족을 해방되게 할 것이다.’ 두 가지 메시지가 막 선포되는 겁니다. 아무리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도 백성들이 참 선지자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기 곁을 떠나갈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한 장면이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하니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6장에 보면, 풍랑을 타고 가던 제자들이 두려워할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6:5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순간에 그들은 평안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든 상황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내 마음 중심에 예수를 모시고 평안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실 때, 바람이 멈추고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해진 줄로 믿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 때문에, 고통받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닿으면, 그래서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내 병에서 놓여 강건하라 (막5:34)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만났을 때 맨 먼저 평안하냐고 물어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제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역시 제자들끼리 같이 모여도 불안 해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주님이 오셔서 딱 한 마디예요. 따라 합시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21)
다윗은 시편 27편 1절 ~ 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 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이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서 나를 치료할 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공동 번역에는 ‘태연하리로다(3절)’를 ‘그 속에서 마음이 든든하리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평안)은 세상에 주는 것(평안)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 두 번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희망입니다. 미래가 보장되는 희망입니다.
11절 다시 읽어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그리고 이어서 보시면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래가 보장된 희망이라고 말씀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희망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십니다.
1871년 미국의 시카고의 대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가게 주인이 미국인들에게 큰 힘을 준 앞에 문구가 있었습니다. 이 간단한 문구 때문에 미국인들이 힘을 얻었답니다. “저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희망을 제외한 모든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내일 아침부터 정상 영업합니다.” 아내도 잃고, 자식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가게 엽니다. 이 문구가 그 당시에 미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 49절 말씀입니다. 주님의 종인 내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그 말씀을 내가 죽기 살기로 붙듭니다!(메시지 성경) 하나님께서는 언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노아를 보세요. 모든 사람이 비난하여도 끝까지 희망으로 배(방주)를 짓잖아요. 요셉을 보세요. 일명 꿈의 사람 아닙니까? 꿈이라는 말이 희망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유혹도 희망 때문에 이기는 것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것도 불평하지 않는 것도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형들,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는 것도 희망이 있으니까 그렇게 용서하였습니다. 갈렙을 보십시오. 84세예요. 그 나이(연세)에도 희망이 있으니 이 산지를 내게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40에 하나 감하는 매를 맞고 다섯 번이나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장차 받을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그는 이겼습니다.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마음에 간직하느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리라. 여러분! 늘 거룩한 생각을 하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시키시고 환경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아 29장 14절에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회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렇게 정말 기가 막힌 처지에 있지만,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고,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주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 코로나 시대에, 내일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이 민족과 들풀 교회 성도님들께서 어려운 삶의 자리가 회복되고 부응하는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중에는 더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 신앙이 더 알짜가 될 것이고,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부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세 번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세 번째는 소통, 찾고 구하며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지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 소통, 즉 기도로 소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6장 37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부르짖으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기도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결론입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회개’입니다. ‘이 코로나 정국을 빨리 종식 시켜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 지금 무엇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욕심대로 살았고,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했고,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우리가 절제하지 못했던 이 모든 것 때문에, 이 땅에 이런 질병이 왔기 때문에, 이것을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하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었고,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이었는데요, 그리고 그것을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길 원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세 가지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니라. 두 번째 미래에 보장된 희망입니다. 세 번째, 찾고 구하면 하나님이 만나서 교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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