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30. 주일 설교: 지혜자의 위로와 도전(전3:1~8). 양은익 목사.

 

지혜자의 위로와 도전 (전3:1-8)

전도서는 한 지혜자가 자신의 인생 후반부에서 깨닫게 되는 부족함과 후회을 후세대에게 전해 주는 회고록, 고백록 성격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시행 착오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 반성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경고문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가까이 하게 되면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는 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3장에서 지혜자가 말하는 것은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현실-위로-도전입니다.

1.지혜자가 보여주는 삶의 현실
지혜자는 개인적인 현실, 사회적인 현실, 두 개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1)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개인의 현실
첫번째 현실은 너무나 유명한 ‘때’에 관한 지혜자의 묘사에 나옵니다. 1절부터 지혜자는 작심하고 때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고, 헐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문학적인 아름다움이 배여있는 문장이지만 이 안에는 우리가 살면서 겪게되는 고통과 한계, 허무가 고스란히 배여 있습니다. 14쌍, 28개의 때가 나옵니다. 각각의 쌍은 긍정과 부정으로 묶여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쌍 중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현실은 긍정입니다. 우는 것 보다 웃기를 원하고, 슬퍼하기 보다 춤추기를 원하고, 뺏기는 것보다 지키기를 원하고, 미움 속에서 살기 보다는 사랑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긍정의 순간만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지혜자는 28개의 때를 통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2) 불의한 현실:사회의 현실
지혜자가 보여주는 현실 두번째는 16절입니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곳이 이러면 다른 곳은 어떻겠습니까? 사회 전체가 불의하고, 악하다는 것입니다.지혜자가 보여준 두 개의 현실, 다 답답하고, 화나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지혜자가 제시하는 위로
지혜자가 길을 보여 줍니다. 위로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1) 인도하심이 있다(3:11)
첫 번째 위로는 11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 사무치게 좋은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안 좋은 때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때가 다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볼 수 없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부정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인도(Negative guidance)하실 수 있기에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는 믿음이고, 인식입니다.

인생의 부정 속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보물과 긍정이 있습니다. 좌절 하지 않아야 할 이유입니다. 반대로 긍정의 순간에도 부정의 독소가 숨어 있습니다. 교만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부정과 긍정만으로는 크지 않습니다. 부정과 긍정이 함께 할 때 큰 사람이 되고, 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햇빛만 계속 비쳐보십시오. 사막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는 일 마다 잘되 보십시오. 열의 아홉은 교만해 집니다. 익은 사람이 되려면 다 겪어 봐야 됩니다.

부정의 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때가 항상 힘들고 어려운 때만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때라는 것. 우리가 받아야 할 소중한 위로고,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이 심판하신다(15.17절)
두 번째 위로는 15절과 17절에 있습니다. 이 위로는 정의와 공의가 사라져서 분노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고 답입니다.

15절에서 지혜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 하나님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잊지 않고 다시 찾으신다(God will seek to do again what has occurred in the past, Net Bible)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난 시간, 과거의 시간은 결정되고 사라진 실체입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시간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내 결산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17절).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악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끝까지 갈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불의한 것들 하나 하나, 그런 행동 하나 하나를 불러내 심판하십니다. 심판하여 불의함으로 고통 당한 이들의 눈물과 탄식과 상처를 회복시켜 주실것입니다.

지혜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 심판을 믿고 있고, 그 심판만이 불의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끈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3. 지혜자가 주는 도전과 조언(22절)
이제 우리가 이런 위로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지혜자가 불의한 세상,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수 많은 삶을 보면서 내린 결론과 도전, 조언은 다른게 아닙니다. 분노하라, 좌절하라, 허무하라가 아니고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라는 말로 바꿔도 됩니다.

22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우리는 너무 속상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전전긍긍하면서 살 때가 많은데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삶의 패턴을 바꿔 보라는 것입니다.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고, 불의한 것을 바로 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니, 그 인도하심과 심판을 신뢰하면서 지금 하는 일에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살라.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어떤 때를 지나고 계십니까? 너무 속상해 하면서, 가슴에 돌 덩어리 올려 놓은체 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지혜자가 조언해 준 것처럼 모든 때를 좋게 하시는 하나님, 불의한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즐겁게 사는 여러분의 복된 인생되기를 바라겠습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