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14. 상식 밖의 배신(삼상23:7~14). 양은익 목사.

 


말씀: 상식 밖의 배신(삼상23:7~14)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23:7~14)

1.
지난주에 본 사무엘상 23장의 말씀, 한 번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위기에 처한 그일라 사람들을 상식 밖의 행동으로 구해 준 다윗을 보았는데, 오늘은 상식 밖의 행동으로 구해준 그일라 사람들이 상식 밖으로 배신을 하게 되는 곤혹스럽고, 난처한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7절 보십시오.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이 보고를 듣고 사울이 얼마나 쾌재를 불럭겠습니까?

본문에는 ‘어떤 사람’이 다윗의 위치를 알려 준 것으로 나옵니다. ‘알리다’는 동사가 원문에는 남성 단수 동사로 나오는데, 히브리어 동사에는 집합 단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한 명인지, 몇 명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일라에 숨겨놓은 사울의 정보원인지, 다윗을 반대하고 사울을 추종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윗은 그일라에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뼈아픈, 악한, 상식적이지 않은 ‘상식 밖의 배신’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은혜로 갚아야지 배신으로 갚으면 어떡합니까? 背信은 믿음에 등을 돌리는 게 배신인데, 이런 배신도 나쁘지만, 상식 밖의 배신은 더 나쁜 겁니다. 상식 밖의 배신은 배신해서는 안 되는 사람, 은혜를 많이 받은 이들이 하는 배신이기에 더 치명적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배신입니다. 이런 배신은 없어야 되는데 상식 밖의 뼈아픈 배신이 곳곳에 있어서 아프게 만들고, 원한을 만들고, 삶을 망가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배신의 가해자는 별거 아니겠지만, 상식 밖의 배신을 당한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 수도 있게 하는 아픈 일입니다. 나쁜 배신 하나만 들어 볼까요? 연속극에서 많이 보는 배신입니다. 사랑하는 남자, 고시 공부 시키기 위해 온갖 고생하면서 뒷바라지해 줬더니 고시 붙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딴 여자한테 가 버립니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테의 신곡에 보면 속 시원한 얘기가 나옵니다. 단테도 이런 사람들에게 열받았는지 배신한 사람들을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에 보내 버립니다.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이 지구 제일 밑바닥에 있는 지하 9층의 지옥인데 이 지옥에 배신자들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이 지옥에 누가 있겠습니까? 가룟 유다가 있고, 가룟 유대급의 배신한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겁니다. 단테는 배신을 사랑에 등을 돌리고, 믿음을 저버린 가장 파렴치한 행동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배신은 사랑하는 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기 때문에 상처가 깊고, 굉장히 아픕니다. 여러분이 다윗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도와주기 힘든 상황이지만, 목숨 걸고 구해 준 것 아닙니까? 근데 그런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어땠을까요?

2.
이제 고난 주간을 보내게 되는데 예수님의 고난에 현장에서 가장 뼈아픈 부분이 배신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힘든 순간,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토록 사랑하던 이들이 다 주님을 배신하고 등 지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말할 것도 없고, 다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 전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것으로 나옵니다. 두렵고 무서워서 그랬겠지만 이런 걸 보면 배신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모두는 배신할 수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배신 한번 안 하고, 배신 한번 안 당해본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세상은 배신으로 꽉 차 있습니다. 동업자도 배신하고, 친구도 배신하고, 어떤 때는 가장 믿었던 남편과 아내도 배신합니다.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사소한 이익 앞에 상식 밖의 배신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1) 나부터 배신하지 말자.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합니다. 배신도 많고, 상식 밖의 배신도 많다면 나도 배신할 수 있기에, 나부터 배신하지 말자. 이 마음부터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이 자신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를 묻습니다. 사울이 정말 올 것인지, 사울이 공격하러 올 때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 줄 것인지?

대답이 어떻게 옵니까? 전부 ‘그렇지 않다’로 나와야 되는데 전부 Yes로 나옵니다. 사울도 오고, 그일라 사람들도 배신할 것이라는 것으로 응답이 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라고 다윗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사울이 공격해 들어오면 다윗을 넘겨 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넘겨주는 이유가 뭡니까? 다윗이 구해 준 것은 고맙지만 살기 위해서 넘겨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다윗을 찾았고, 이번에는 살기 위해서 다윗을 버리는 겁니다. 사는 게 뭔지 참 얄궂지요! 사람은 위기와, 두려움과 욕망 앞에서 배신할 수 있는 약한 존재입니다. 제자들도 이미 다 보여줬고, 우리도 경험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배신당한 사람과 배신 한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더 많습니까? 배신한 사람이 있어야 배신 당한 사람이 있는 법, 배신한 사람과 배신 당한 사람은 똑같아야 합니다. 근데 누가 항상 더 많습니까? 배신한 사람 보다 배신 당한 사람이 언제나 많습니다. 왜 그런가요? 사람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배신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배신 당한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데, 내가 배신한 것은 의식 밑으로 눌러 버리는 방어 기제가 있습니다.  배신 당한 사람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배신을 말할 때는 남의 배신도 봐야 하지만, 나부터 배신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유 없는 배신은 없지만, 등 돌리고 싶은 유혹이 생기면 많이 생각하십시오. 지금은 섭섭하더라도 ‘아 그래도 내가 받은 게 많구나’ 하면서 참아내시고, 인생을 길게 보면서 상식 밖의 배신으로 인해 겪는 아픈 결말을 막아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배신의 쓴맛을 볼 때입니다. 다윗처럼, 상식 밖의 배신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하면서 응징하러 나서시겠습니까? 복수할 수도 있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깨닫게 해 줄 필요도 있습니다. 근데 배신을 당하게 되면 복수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배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 마음입니다. 상식 밖의 배신을 당하게 되면 마음의 충격이 이만저만하지 않습니다.

믿었던 사람인데, 사랑했던 사람인데, 마음을 준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보복을 한다 해도 쉽게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너무 속상하고 아파서 두고두고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오래갑니다. 그래서 이 상처 난 마음을 고쳐 내는 게 배신의 현장에서는 참 중요합니다.

배신으로 인해 새까맣게 탄 상한 마음, 어떻게 고치시겠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상처가 크고, 아플수록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을 꼭 발견해 내야 합니다. 내가 의지하고 믿어야 할 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시기까지 하신’(갈 2:20)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상처 난 마음을 이겨내야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서 상식 밖의 배신을 당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어떻게 죽이려고, 팔아먹습니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고 배신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런 배신의 상처를 이겨냅니다. 어떻게 이겨냅니까? 하나님으로 인해 이겨 냅니다. 하나님이 배신 당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도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배신으로 인한 마음을 다스리고 이겨냅니다. 배신의 상처와 아픔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근본적으로 벗어 날 수 있는 최고의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품 안에서 누리는 영광을 맛볼 때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상처 난 마음이 하나하나 아물게 됩니다.

상처 난 마음으로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에게 주시는 시편 기자의 말씀 하나 있는데, 담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8편 말씀입니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8.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13.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런 귀한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셔서 상처 난 마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람은 배신하지만 하나님은 지켜 주시고, 구해 주십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혹시라도 배신의 아픔을 겪게 되면 배신이 무너지지 마시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믿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내일부터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 배신의 아픔으로 가득 찬 고난주간이지만 주님은 배신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잊지 마십시다. 우리도 배신에 무너지지 마십시다. 하나님을 깊게 신뢰하고 소망하면서 이겨내는 귀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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