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7. 주일 설교: 새 힘을 얻으십시오(사40:27~31). 양은익 목사.

 


말씀: 새 힘을 얻으십시오(사40:27~31)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27~31)

1.
오늘 본문은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말씀인데, 함께 보면서 새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씀의 구도는 간단합니다. 힘든 상황으로 인해서 불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이들을 향한 이사야 선지자의 응답입니다. 27절에 불평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하면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포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불평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람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힘들어요’ 그러면 ‘힘드시지요. 불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너무 하시네요’ 이러면서 동조할 텐데 이사야는 그들의 불만과 불평이 정당한데도 쉽게 동조하지를 않습니다. 27절 다시 보십시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새 번역)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정을 몰라 주는 것도 모른척 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온 땅을 창조하시고, 지칠 줄 모르는 힘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은 피곤한 너희들, 기운을 잃고 있는 너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힘 빼지 말고, 이런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바라보면서 새 힘을 얻어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삶을 회복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셔서 새 힘 얻으시기 바랍니다.

2.
31절에 ‘새 힘을 얻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힘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새 힘을 얻고 싶으면 힘을 바꿔야 됩니다. 어떤 힘에서 어떤 힘으로 바꿔야 됩니까? 자기 힘, 물질의 힘, 경험의 힘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바꿀 때 새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힘의 근원을 바꾸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이런저런 힘을 믿던 이들이 하나님의 힘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바꾸는 것, 이게 신앙생활이고, 신앙의 삶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재미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힘과 능력은 대단하지만 한계가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30절에서 그러지요.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 거린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의 한계와 약함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힘은 28절. 땅 끝까지 창조하셨는데도 피곤하지 않으시고, 29절.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도 힘을 주시고, 31절. 뛰어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게 만드시는 힘을 가지고 계시고, 그러한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우리의 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새 힘이 있고, 이 새 힘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이 새 힘을 기대하는 것이고, 이 힘으로 바꾸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힘들수록 이 새 힘으로 바꿔 나가야 됩니다.

3.
어떻게 하면 새 힘을 가질 수 있습니까? 3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확신을 갖고 선포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오직 여호와를 소망하는 사람’이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새 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을 소망하고 기대하고 바라보는 이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처럼 치고 올라가게 하시며, 끝없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게 하시는 힘을 주신다는 것,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도대체 하나님은 왜 내 사정을 몰라 주는 거야’ 하는 마음이 강하게 치고 올라올 때 이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4.
가나안 집안에서 태어난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둘 다 힘든 상황에서 자랐는데 둘은 너무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형은 거리에서 구걸하며 사는 신세가 되고, 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유명한 대학교수가 됐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기자가 알게 돼서 두 사람의 삶을 추적하게 됩니다. 어떻게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가? 오랜 추적 끝에 형제가 자란 시골집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버려지지 않고 그대로 걸려있는 액자 하나를 발견합니다.

액자에 이런 글이 적혀 있더라는 거예요. Happiness is nowhere. 행복은 어느 곳에도 없다. 이 기자가 형에게 가서 물어봤다는 거예요. 액자가 기억나며, 늘 그걸 보면서 자랐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동생에게 갔습니다. 기억나는가? 역시 기억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동생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띄어쓰기를 달리해서 봤고,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Happiness is now here.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같은 글이지만 한 사람은 희망을 갖고 보고, 한 사람은 희망 없이 본 겁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별게 아닌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God is nowhere로 보는 사람이 있고, God is now here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새 힘이 없다는 사람은 새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새 힘은 하나님을 소망하고, 바라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 명심하시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새 힘 얻어 내시기 바랍니다.

5.
또 하나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는 방법이 있는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새 힘을 주십니다. 사람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힘이 돼서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힘을 줄 수도 있고, 힘을 뺐을 수도 있는데 힘을 주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주는 힘도 하나님이 주는 힘만큼 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아프게 되면 사람이 주는 힘이 얼마나 필요하고, 그리운지 절감하게 됩니다. 아픈 사람 주변에 있으면 모른 척하지 마시고 잘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16세기에 활동했던 아빌라의 테레사라는 사람이 지은 시가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 밖에는. 그분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우리의 손 밖에는. 그분에게는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발 밖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통하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발로 뛰어다니시며 선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손과 발이며 눈이라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발과 손과 눈이 돼서 서로에게 주님의 역할을 하기 원하십니다. 서로에게 주님이 될 때 거기서 새 힘이 나오게 됩니다. 아픈 이들, 힘 빠진 이들에게는 따뜻함과 사랑이 최고의 약입니다. 여러분들도 힘든 이들에게 새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힘든 순간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과 사람이 주는 새 힘 받으셔서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힘찬 삶 살아내시기 바랍니다.(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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