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집중 기도회 5: 현실과 약속 사이에서(창13:14~18). 양은익 목사. 2017.10.20

 

말씀: 현실과 약속 사이에서(창13: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13:14-18)

오늘 집중 새벽 기도회 첫 주 마지막 날 5일째입니다. 주제 성구 외치고 시작하겠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이 주제의 말씀 삶 가운데 잊지 마시고, 늘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13장 마지막 부분, 아브라함의 통 큰 양보 뒤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떠납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이사합니다. 롯이 떠난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은 이 말씀 보면서 ‘현실과 약속 사이’에서 우리 신앙의 기반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롯과 아브라함이 서로 헤어졌습니다. 늘 함께 해왔고, 헤어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인데 정말 헤어졌습니다. 이것은 삶의 현실이 주는 무게감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현실적 문제들을 무시하며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 헤어짐의 사건 뒤에 아브라함과 롯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갑니다. 헤어진 후 모두 잘 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과 약속’의 문제에서 롯은 ‘현실’을 추구하는 대표적 삶을 산 사람으로,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대한 더욱 깊은 신앙으로 점점 더 성숙해 가는 영성을 지닌 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떠난 후 그의 인생과 신앙생활에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영혼의 멘토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지도자가 사라졌습니다. 결국, 서서히 망가져 갑니다. 롯은 아마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혼자서도 신앙생활도 잘하고,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떠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방이 환한 빛을 따라 날다가 불 속으로도 뛰어드는 것처럼, 롯은 점점 더 세속을 향해 한 걸음씩 깊이 들어갑니다. 그 세속의 상징적 도시가 소돔입니다. 그 도시는 너무나 화려하고 번화하여 누구나 들어가 살고 싶어 하던 도시입니다. 인간은 ‘장소의 존재’라 장소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소돔에 들어간 소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14절)라는 이 구절은 위험한 구절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이 영적 멘토를 떠나지 않도록, 또한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많은 애를 써야 합니다. 또한, 주위의 신앙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영적 멘토로 헌신해야 합니다.

롯과 헤어져 쓸쓸해 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두 개의 명령을 주시고, 약속을 주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4) 첫 번째 명령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주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15~16절) 이 약속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주신 약속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두 번째 명령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17) 사방을 다니며 새로 거주할 곳을 찾아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명령에 따라 사방을 다니며 거주할 곳을 찾습니다. 그리고 헤브론 지역으로 이사합니다.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지역은 산지이며 헷 족속의 성소가 있는 조용한 장소입니다. 이렇게 헤어진 후 두 사람의 거주할 장소가 정해집니다. 롯은 소돔이라는 당시 최고의 도시, 모든 사람이 가고 싶어하는 도시를 택했고, 아브라함은 헤브론 산지 척박하고 한적한 곳, 마므레 상수리 수풀 지역을 택해 거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거주지가 달라집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죄의 본성이 있어, 감각적(세속적)인 것에 끌리는 본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저항하는 영성이 생긴 것입니다. 내면에 강한 영적 생명의 에너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실패 후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더 강해지고 견고해지는 영성의 소유자로 성장해 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실패 후 하나님의 실체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깨달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각과 의식이 생겨나 세속적인 것에 저항하는 영성이 생긴 것입니다.

실패한 아브라함을 약속대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죄는 아브라함이 지었는데, 바로를 벌하시는 하나님. 그 죄 된 사건 후에도 그 사건으로 인해 생긴 재산들을 그대로 애굽에서 갖고 나오게 하시고 더욱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아브라함은 변화되어 갔습니다. 반면, 롯은 이 모든 사건을 함께 경험했지만, 어떤 교훈도, 도전도, 느낌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현실에서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 이 사건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 여쭈어봐야 합니다. 그 사건의 의미를 놓친 채, 어떤 교훈도 도전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제2의 롯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들어 올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것만 따지고 계산만 하고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들어오시겠습니까?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헤어진 후 사는 장소도 달라지고 사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한 사건이 한 사람 인생에 치명적인 해를 미칠 수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사건의 의미와 앞으로의 파장과 내 삶에 끼칠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롯은 ‘현실’을 붙잡았고, 아브라함은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현실만 알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소망 중에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약속을 소중히 믿고 깨달은 아브라함은 현실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문제들에 별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약속’이 있어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게 된 아브라함은 살아가는 것에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넉넉해진 것이고, 롯에게도 관용하며 양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2-3)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동행하면서 실체를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약속이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더욱더 넉넉해져야 합니다. 현실이 아니라 약속을 믿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거주지를 왜 척박한 산지인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숲으로 정했을까요? 분명히 어느 곳을 선택해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고 하셨는데요. 더구나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땅은 추상적인 땅, 미래적인 땅, 가상적인 땅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습니다. 그 약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롯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땅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언제 주실지도 알 수 없는 약속의 땅을 택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눈앞에 현실로 존재하는 이 땅(세상의 땅)을 선택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미래의 땅을 선택하고, 그 약속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 희망 안고 헤브론 산지,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교제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실과 약속 사이에서 약속을 따랐고, 약속을 신뢰한 것입니다.

신앙은 현실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따르며 소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허구로 봅니다. 그러나 약속 속에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약속 속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과정입니다. 구약을 통해 주신 약속은 하나하나 실현돼 갔습니다.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고 남아, 우리가 기다리는 약속은 다시 오실 주님, 미래 종말의 약속입니다. 신자는 이 약속을 믿으며 희망 중에 고난의 현실을 기도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약속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약속으로 희망을 품고 힘차게 살아가는 믿음의 삶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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