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실패한 자의 부활 ( 요21:15-17)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21:15-17)
계절의 여왕인 5월 첫째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부모님을 기억하는 주일 아침입니다. 가정마다 기쁨과 축복이 넘치기 바랍니다.
신현림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처럼 나약한 마음과 저승 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신현림, 나의 싸움, 부분)
살다 보면 나를 망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여린 시인의 독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무너지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을 우리의 자녀들도 싸울 것 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 이후의 역동적 자리에 있습니다. 교회는 부활 이후 성령께서 오실 때까지의 50일 을 위대한 50일(The Great fifty day)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숨어야 했던 자들, 절망한 이들 모두가 이 위대한 50일 동안 다 다시 일어서고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이 위대한 50일의 체험과 은혜를 직접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를 통해 주님의 부활 사건과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만나 주신 인물들을 살펴봤었습니다. 가장 먼저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절망 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좌절한 두 제자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들도 다시 살아나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심 많던 제자 도마를 만나주셨습니다. 도마도 회복되어 위대한 고백(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그냥 살아 계심을 보여주신 것(Show up)이 아닙니다. 주님의 찾아오심은 십자가 사건 후 무너진 자들을 세워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관리해 주시기 위함(Follow up)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베드로를 찾아 주십니다. 십자가 사건을 겪으면서 가장 큰 내상을 입은 자가 아마 베드로일 것입니다. 주님의 수제자였으며,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완벽하게 무너졌습니다. 베드로의 세 차례의 무너짐을 누가는 잘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보시오. 나는 그를 모르오'(눅22:57), 두 번째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란 말이오'(눅22:58), 세 번째는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눅22:60) 입니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고 새벽에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베드로는 밖으로 나아와 비통에 잠겨 웁니다. 주님께서 그 날 십자가 죽음을 돌아가셨기에 주님께 달려가 변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부활하신 주께서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어디로 찾아오십니까? 처음 베드로를 부르시던 곳, 갈릴리 바다로 ‘숯불’ 피워놓고 찾아오십니다. 숯불 앞에서 실패했기에 숯불 피워놓고 확실하게 회복하라는 뜻인가요! 숯불 앞에서 손수 준비하신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가가십니다. 거기서 유명한 ① 세 번의 질문, ② 세 번의 대답, ③ 세 번의 새로운 임무를 주심으로 그의 세 번의 실패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세 번 물었지만, 질문은 하나입니다. ‘네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느냐!’ 대답도 하나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베드로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을 것 같지 않습니까? 질문 하나하나가 얼마나 묵직합니까? 너 정말 나 사랑하니! 정말이니! 확실하지! 과거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베드로의 진심을 확인하신 주님은 주님의 양을 돌보라는 소중한 임무를 맡기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절). 내 양을 치라(16절). 내 양을 먹이라(17절).
주님께서 베드로라 다시 부르시고 내 양을 먹이라 하실 때 얼마나 크게 감격했겠습니까? 이 순간 베드로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맛봤을 것입니다. 상처에서 치유하고 회복된 경험이 베드로가 상처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회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이후의 삶은 사역과 치유와 회복시킴의 열정적인 사도의 삶이었고 결국 거룩한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위대한 50일을 지나면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이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상처 속에 있는 우리를,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분열 속에 있는 우리를 회복시키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은 우리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나의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나의 남편이 나의 아내가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회복하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우리는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단 낙오자가 되면, 낙오자로 낙인찍혀 방관 되고, 무시당하는 냉혹하고 잔인한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아픔과 문제들이 무엇인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아이들도 성적과 외모에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연세대 사회 발전 연구소에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OECD 주요 국가의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꼴찌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넘어지면 다시는 회복하기 힘들다는 생각 속에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그렇습니다. 모두가 아파하며 삽니다. 우리는 모두가 살아나야 합니다. 모두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회복되고 살아나야 하고,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사회가 모두 회복되고 살아나야 합니다.
이 위대한 50일의 중심에는 부활의 용서와 기쁨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서야 합니다. 주님께 깊이 치유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변을 치유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회복된 사람들이 치유자가 되면 세상을 감동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서로가 죽이겠다고 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이웃과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말조차 못 합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만이 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만이라도 연결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르완다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정말 보잘것없는 아프리카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용서와 화합의 모습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지금은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라고 불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4년 4월~7월 르완다에는 80만~100만 명이 학살되는 대참사 사건이 일어납니다.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소수인 투치족이 다수인 후투족을 다스리던 상황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대통령은 후투족이었습니다. 사고로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사망합니다. 후투족은 투치족이 이 사건 배후에 있다고 의심하고 대학살을 시작합니다. 하루에 만 명꼴로 죽였습니다. 1분에 7명씩을 죽인 것입니다.
내란이 일자, 우간다에 군인으로 복무하던 현재의 대통령인 카가메가 모국으로 돌아와 내란을 제압합니다. 후투족을 모조리 잡아들입니다. 내란을 일으킨 이들 후투족을 모조리 처형하면 국민이 거의 없어집니다. 투치족은 정말 소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용서하고 받아주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프리카에는 가차차(Gacaca)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참회하면 용서한다’는 의식입니다. 카가메는 지도력과 통솔력을 발휘합니다. 모두가 다 따르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자들을 열심히 설득해 가면서 새 나라의 시작을 투옥, 보복, 학살로 시작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로 나라를 살리고자 뚝심 있게 반대 세력을 설득하며 밀고 나간 것입니다. 주민등록증에도 후투족, 투치족 구분 있던 것을 폐기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지도력입니다. 카가메는 2000년부터 대통령을 연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국민에게 엄청난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는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정의와 공의만 붙들고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르완다 국민이 오히려 부럽습니다. 우리도 나라가 더욱 어려워지기 전에 이 땅의 정치인들이 이런 화합과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주님의 자비에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현재는 주님의 사랑에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내일은 주님의 섭리에 맡기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맡아 주십시오. 위대한 50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고 큰 소명을 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찾아오시고 우리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지 마십시오. 가슴 깊이 받아 들이십시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실패하고, 실패하지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소서. 실패하고, 낙심할 때마다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어, 나에게서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아 내소서. 그리하여 상처 많고 실패 많은 세상 가운데 나가 주의 양을 치고 먹이는 귀한 인생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정리: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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