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사랑의 설렘에 눈뜨던 소년 시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흥얼대던 노래입니다.
한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먼 훗날 위해 내미는 손 둘이 서로 마주 잡고 웃네.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 둘이 좋아해.
긴 세월 지나 마주 앉아 지난 일들 얘기하며 웃네.
(양희은, 한사람, 부분)
( https://www.youtube.com/watch?v=quLlPfAeU4Q )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
참 복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빗장 걸어 잠가 놓고
곁을 주지 않는 사람들만 가득한데(Gated Society, 빗장 건 사회)
서로 바라보고, 마주하며 사는 기쁨은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축복을 어디서 찾고 있나요?
축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속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기 바랍니다.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축복을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이제는 정말’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나무가 되어 강가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새들이 되어 나란히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피천득, 축복)
나무가 나란히 서 있고
새들이 나란히 나는
당연하고 사소한 것에서
복됨과 기쁨을 발견하고 노래하는
시인의 순수함이 부럽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나란히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 소중함과 축복됨을 보지 못할 뿐이지요.
더 나가, 우리에게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예수의 영께서
지금도 곁에, 나란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이 귀한 축복을
알아보고, 누리며 살기를 바랄뿐입니다.
오늘 하루도
축복을 누리면서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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