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는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왜 사람을 만들었던가 싶으시어 마음이 아프셨다. 그러나 노아만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에 노아만큼 흠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창6:5~6, 9. 공동번역)
우리 세상 각박하다 해도
그래도 살만한 것이
똑똑하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고
꿈에라도 생각하겠습니까.
…
똑똑하지 못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임종길, 어치에게서, 부분)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곳에서
노아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는
너무 들었나 봅니다.
죄로 꽉 찬 사람들 같지 않아서 그랬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노아를 보면
세상이 악해도
얼마든지 올곧고, 흠없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습니다.
똑똑하다는 소리 못 들어도 좋으니
살만한 세상 만드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부터 비롯되고,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天下之難作於易, 天下之大作於細 천하지난작어이, 천하지대작어세.
노자 도덕경 63장)
우리도 쉽고 시소한 일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오늘 평안을 베풀었는가?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가 찾아들게 했는가? 치유의 말을 했는가? 분노와 원망을 버렸는가? 용서했는가? 사랑했는가? 이것이 정말 중요한 질문들이다. 내가 지금 뿌리는 한 조각 사랑이 여기 이 세상에서와 오는 내생에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어야 한다(헨리 나우웬, 안식의 여정, 101)
이래저래
노아 할아버지가 존경스럽고, 그립습니다.
똑똑하지 못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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