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16: 염려하지 말라(마6:25~34). 양은익 목사. 2016.6.5.

 

 

산상설교16: 염려하지말라(마6:25~34)

오늘 말씀은 산상 설교 중 아름답고 주옥같은 설교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며 살지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 들풀 모두 하나님께서 기르고 입히시는데 모든 것 중 귀히 여기는 너희는 더 나은것으로 해주실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수많은 걱정에 짓눌려 사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힘이되는 아름답고 소중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이렇듯 귀한 주님의 말씀이 있는데, 그리고 이 말씀이 큰 위로의 말씀이 맞는데 우리에게 큰 불편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 입니다. 왜 입니까? 이유는 이 귀한 주님의 말씀이 이 치열한 전쟁터 같은 현실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현실성이 떨어지고 한가해서 낭만 타령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것입니다. 주님 지금 그렇게 살면 쪽박차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일을 놓으면 뭔가 불길하고 두려운 느낌, 숨이 턱 막하는 느낌이 엄습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십시요 이 말씀이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이 아쉽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는 그냥 말씀으로만 좋은 말씀. 현실에는 적용시키기 어려운 말씀으로 끝내 버립니다. “주님 나는 계속 염려하고 걱정할 것입니다” “염려는 나랏님도 어쩔수 없다고 했습니다”하며 정당화합니다. “세상이 이토록 악하고 나는 이렇게 약한데 어떻게 이 말씀이 가능합니까?”합니다. 며칠 전 뉴스에 자살하기 위해 뛰어내린 사람이 퇴근길 부인과 자녀와 만나 집으로 귀가하던 성실한 가장인 공무원을 덮쳐 공무원이 그 자리에서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염려를 안합니까?

당장 해결 할 끼니가 없어 걱정하는 사람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말로만 그런식으로 얘기하고 뒤로 빠지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설득하고 계시지만 염려할 만한 것을 염려하는 것은 주님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 일을 걱정하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래서 염려는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본성에 있는 방어 기전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일어나는 자연적인 방어 체계입니다. 염려할 상황인데 끄떡없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위선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본능적인 염려까지 막으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염려할 상황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나야합니다. 염려할 상황에 대한 처신과 자세가 달라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이 본문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만 떼내서 이해하고자 하면 말씀의 진의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여러 성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님의 산상 설교의 대상인 청중은, 한 끼를 걱정해야하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 끼니 해결을 위해 사투하는 사람이 대상이었다면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때처럼 일단 일용할 양식을 해결 해 주셨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래서 잔인한 말씀이 아닙니다. 부유하지 않지만 적어도 일용할 양식이 있는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적어도 너희가 나를 따라와 제자의 삶을 살고자할 때 “염려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지금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염려만 하지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염려하는 삶을 살면 24절 말씀처럼 하나님과 재물 중 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재물을 택하는 우를 범하게 되고 하늘의 보화대신 땅의 보화를 쌓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보다 못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와 들풀도 저렇게 보살피시는데 가장 귀히 여기시는 너희는 더한 것으로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방인들(안믿는자)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땅의 것만 구하고 탐하며 사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 모든 말씀은 신앙과 염려를 비교하면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대충 믿지말고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하면(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함이 없으면) 우리 안에 커지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또한 극도의 긴장감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 힘들고 잠못 자고 극도의 압박감으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땅의 보화를 더 중요한 것으로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자리에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과 돈의 대결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염려와 불안이 밀려옵니다. 돈은 잠깐은 가능하겠지만 영원한 평안과 안정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모든 걱정은 돈 걱정입니다. 건강 걱정도 결국은 돈 걱정입니다. 하나님은 삶에서 서서히 밀려납니다. 불안할수록 하나님은 희미해져갑니다. 본문 33절에서 주님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걱정과 염려함으로 돈이 생긴다면 여러분이 걱정 염려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돈이 생기지 않습니다. 걱정할수록 돈의 종이 됩니다. 꼼짝 못하게 됩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성령님이 두 가지에 꼼짝 못합니다. 첫째가 시험(특히 고3 입시 시험), 둘째가 돈이라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 때문에 생긴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사실 주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돈에 굴복하여 어쩔수 없다고 정당화시키면 안됩니다. 돈의 종이되면 완전히 굴복하며 살게 됩니다. 목사라서 개념없이 과감하게 선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돈은 실제로 중요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교회도 돈이 없으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어 실제로 문닫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제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도 많은 부분을 돈으로 합니다. 돈은 실로 위협적이고 강합니다. 주님은 38개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 16개가 돈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만큼 돈이 중요한 것을 주님은 아셨고 돈에대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신것입니다.

주님은 돈이 분명 중요하지만 경배하고 숭배하지 말아야 함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돈을 경배하는 순간 신앙, 믿음 다 사라집니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앙 여정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함없이 올바른 신앙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극진히 마음을 써주십니다. 지금 삶의 우선 순위가 바뀌어 있습니까? 우선 순위를 바꿔보십시요 신자의 회심은 두번있습니다. 첫번째 회심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회심입니다. 두번째 회심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뢰의 회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없으면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집니다. 무늬만 신자가 아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께 깊은 신뢰를 드릴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여 드리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가장기뻐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잠언 3장 5~6절에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신뢰가 클수록 염려는 작아집니다. 염려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십시오. 눈을 크게 여셔서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기주시고 힘주셔서 염려를 극복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울새와 참새의 대화를 끝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울새가 참새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알고 싶어. 왜 이 근심 많은 인간들은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며 바쁘게 사는지. 참새가 울새에게 대답했다.친구야, 내 생각엔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안 계신 게 분명해. 너와 나를 돌보아 주시는 그분말이야”(체니. E.Cheney)(정리: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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