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 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 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15:4~6)
99:1.
‘數의 神話’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받아 들이기 힘든 가르침입니다.
자신이 99에 속해있다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길 잃어버린 1이라도
어리석다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1이라면
주인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 주기를 바랬을 것 같은데…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이것일 겁니다.
하나를 소홀히 하게 되면
아흔아홉도 언제든 버릴 수 있다.
세상은 수의 신화를 포기하지 못해도
1의 소중함을 배운 주님의 사람들은
뒤처진 사람들, 길 잃어버린 연약한 사람들을
찾고, 아끼는 수고를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누구든 아껴주시던
주님의 마음이 그립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마음으로 가득 찰까요?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단풍 드는 날, 부분)
우리의 생의 절정도 똑같을 것입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부분)
모든 이를 향한 아낌 없는 사랑이 있을 때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백만송이 장미 피어나겠지요.
아낌이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십시다.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살 맛 나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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